[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임신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임신에 대한 권리는 당사자에게 없고 그저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해 또는 부모님의 노후를 위하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자궁의 권리’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결혼 1~2년 차에는 ‘신혼’이라는 면죄부가 주어져 임신에 관한 주변의 걱정과 비난에서 자유로웠지만 2년 차 이후부터는 그 면죄부가 적용되지 않았다. 나는 그토록 피하고 싶던 ‘임신을 강요하는’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다.

잠정적으로 난 임신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나의 배우자는 그 의견에 80% 동의를 하였다. 우리 부부의 결정을 설득하려는 사람들의 자세는 그들 나름대로의 친절과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주변의 안부인사는 임신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었고, 심지어 산부인과를 찾아서도 간호사에게 임신을 설득당하고 있는 꼴이다. 그 중 가장 힘든 건 역시 부모를 설득하는 일이다. 너무 감사하게도 시부모님은 내심 바라시겠지만 임신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엇이든지 털어놓을 수 있는 막역한 사이인 친정부모님의 강요는 어떠한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이냐?”는 엄마의 질문에 나는 낳지 않을 것이며, 그럴 여력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싫다는데 왜 자꾸 강요하냐고 되물었다.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라는 대답에 ‘임신과 육아’는 날 위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너희 시부모님 생각은 안 하니?”라는 말이었다.

나를 위한다는 임신이 왜 남을 생각해서 하는 임신이 되어야 하는가? 나란 존재는 단지 부모님의 자손 번창과 손자들의 재롱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아기를 낳는 기계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에 대한 권리는 당사자에게 없고 그저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해 또는 부모님의 노후를 위하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그것들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고 다들 친절한 척 말을 하고 있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하였다. 오랜만에 친구 부부를 만나 맛난 저녁과 세상이야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둥이 집인 그 부부는 다섯 식구가 적당히 살아갈 수 있는 넉넉한 수입과 엄마의 자식에 대한 애정 및 교육열 등 합이 아주 잘 맞는 분들이었고 그들의 삶은 평화로우며 안정적이었다.

교육, 예의범절 등 훌륭하게 세 자녀를 키우면서 집안일에 남편의 취미활동까지 지원하는 열심히 사는 남편 친구 아내의 모습에서 그런 평화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육아에 치우쳐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두려움에 정말 많이 울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우리 부부는 임신에 대한 20%의 가능성을 늘 고민하며, 맞벌이 부부로 적지 않은 수입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정말 먹는 것, 입는 것, 자기발전 등 모든 욕심들을 버린다면 그 가능성이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달 들어가야 하는 대출금과 지금까지 키워왔던 커리어를 한순간에 놓아야 한다는 두려움은 선뜻 그 가능성에 손을 내밀 용기를 품지 못하게 한다. 일말의 가능성을 가졌던 남편 또한 만약 빚이 없다고 해도 우리는 남부럽지 않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아이에게 주지 못할 것이라며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는 안 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백화점을 가도, 학교를 가도, 우리나라 어디든지 빈부격차는 공기처럼 퍼져 있으며, 어린 시절의 그 격차는 이제 성인이 되어서도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서러움을 내 아이가 느끼지 않길 바라며 그렇기에 나는 임신을 하지 않기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임신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나뿐만 아니라 비혼여성과 더불어 자녀가 없는 부부 및 예비부부 모두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자녀를 낳지 않는 권리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결정이다. 이 사회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는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이 감춰져 있는 당사자의 처절한 슬픔을 공감해주길 기대하며 더 이상 “아이는 생각이 없어요. 낳지 않으려고요”라고 대답하는 여성에게 그만 조용히 말과 시선을 거두어 주길 바란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저는 정말 필요없습니다.”

<배백합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