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남성권력의 쩨쩨한 사회에 안녕 고하자

남성권력이 해체되어야만 비남성 존재들에 대한 오해와 차별이 종식될 것임을 안다. 생리휴가 또한 남성권력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여성 노동자의 인권이다.

조물주에 성별이 있다면 그의 성별은 여성이 아닐 거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생리를 속된 말로 지랄 맞게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언젠가 조물주를 만나면 괘씸죄로 지옥에 가더라도 그의 뺨따귀를 세게 후려치겠다며 SNS 계정에 적은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우리는 생리할 때마다 생명의 탄생과 자신의 실존을 고찰하게 되는 듯” “남자도 지랄 맞게 만든 걸 보면 아마 생식기관이 없을 듯” 등의 인상적인 댓글을 달아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다. 나는 다양한 여성들 중 소위 말하는 종족의 세부 특성으로 1년에 약 3개월, 평생에 10년 정도는 생리라는 고난의 주간이 프로그래밍 된 몸으로 태어난 것이다. 왈칵 쏟아지는 선지 모양의 핏덩이들부터 한여름에 땀과 피가 뒤엉켜 나는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와 피부 짓무름, 생리전증후군 등등 이놈의 생리는 버그가 너무 많아 항상 나를 당황케 한다. 그리고 직장생활에서 가장 난감한 건, 심한 생리통이다.

최근 생리통으로 또 일을 못했다. 당일 업무는 미뤄졌다. 생리 시기는 짐작할 수 있지만 정확한 시작일은 지진처럼 당일이 되어서야만 알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업무 스케줄을 조정할 수도 없었다. 1년 9개월 만에 취직한 새 직장이라 무난하게 시작하고 싶었고, 교육 일정을 잘 소화하고 싶었으나 도저히 안 되겠기에 당일 아침 생리휴가를 냈다. 다행히 몇 해 전 다녔던 어느 직장처럼 “일단 출근은 해서 아픈 상태를 보여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생리휴가가 엄연한 법적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생리휴가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기에, 그리고 내 생리 때문에 동료들의 스케줄이 재조정됨을 알기에, 휴가 사용을 막지 않은 직장의 아량이 고마웠다. 하지만 나중에는 ‘아픈 것도 서러운데 왜 우리 노동자들은 각자가 가진 권리를 행사하는 당연한 일에도 머슴처럼 직장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매달 피를 쏟는 일주일이 오면 ‘자궁의 쓸모’에 대해서 생각한다. 가난하고 일 못하는 30대 비혼 여성이 언젠가의 출산을 위해 이렇게 성실히 고통스럽게 생리를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들이다.

대한민국에서 가난한 여성이 아이를 낳아 양육을 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일까? 처참한 공공 육아 정책이야 모두들 아는 상황이고, 아이의 부모는 물론 조부모까지 나서야 하는 게 대한민국 육아의 실체가 아닌가. 아이를 낳으면 ‘맘충’이라 불리고, 비혼 여성으로 아이를 낳으면 ‘독하다’는 소리 들으며 갖은 고생을 겪고, 기혼 여성으로 아이를 낳으면 ‘경단녀’가 되는 사회가 아닌가. 회사 눈치 보며 어렵게 육아휴직을 해도 결국 1년 뒤면 다시 맞벌이하면서 ‘독박육아’까지 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게다가 자녀의 행복은 부모의 경제력으로 결정되는 시대가 아닌가.

내가 낳은 아이가 “엄마는 최순실도 아닌데 왜 나를 낳았어? 정유라가 되고 싶어”라며 내 치맛자락을 붙잡고 펑펑 우는 꼴을 상상하면 이놈의 자궁, 그냥 속 편하게 들어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불행한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니 좋고, 생리를 안 하니 편하고, 회사에서는 생리휴가 쓰는 이기적인 여직원이라는 낙인도 안 찍힌다. 그리고 혹 생리를 안 하면 능률도 올라 일 잘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해법은 ‘자궁 들어내기’와 같은 비극적인 상상들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다 안다. 결국은 사회 전반에서 남성권력이 해체되어야만 비남성 존재들에 대한 오해와 차별이 종식될 것임을 안다. 생리휴가 또한 남성권력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여성 노동자의 인권이다. 남성권력의 해체는 사회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데, 최근 페미니즘 저변의 확대는 한국 사회에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토대를 또 한 번 넓히는 것 같아 반갑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모 트위터리언의 발언처럼 ‘신발 깔창 생리대 대신 무상 생리대’ 이야기가 나오면 ‘자궁은 너의 것’이라고 얘기하다가, 낙태권 얘기가 나오면 ‘네 자궁은 우리의 것’이라고 얘기하는 이 기막히고 쩨쩨한 사회에, 이제 발랄하게 안녕을 고하자.

<없음벨라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