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우리 사회에 ‘허드슨강의 기적’은 없는가

우리가 현재 가장 잘 하고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책임지지 않는 것’, ‘책임 돌려막기’인가 싶다. 일을 잘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잘못에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바라는 것은 이번 생에서는 바라지 말아야 할 욕심일까?

지인이 ‘설리’를 꼭 보라기에 연예인 그 ‘설리’인 줄 알고 ‘내가 그녀를 왜 봐야 하나’ 혼자 고민했다. 알고 보니,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을 보라는 말이었다. 설리(체슬리 설리 설렌버거)는 2009년 1월 15일 샬롯으로 향하기 위해 이륙한 US AIRWAYS 1549편 기장 이름이다. 비행기는 이륙하자마자 새 떼와 충돌하여 엔진이 멈춰 추락 위기에 놓였고, 설리와 부기장은 208초 사이 빠르게 판단하여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한다. 기장을 포함은 승객 155명은 침착하게 침수된 비행기를 탈출했고, 4분 만에 도착한 첫 구조선 등 무려 1200명의 구조대원이 협력한 결과 24분 만에 전원 구조되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허드슨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비행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한 결과다. 그럼에도 영화는 ‘영웅’을 만들지 않고, ‘책임’을 따진다. 사건 후 빠르게 구성된 국가운수안전위원회는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한) 그 결정은 타당했는지, 회항하는 방법을 택할 수는 없었는지 다각도의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며 설리에게 사고의 책임을 묻고, 설리도 침착하게 그날의 일을 복기한다.

영화는 분명 한국 사회와 무관한 내용이지만, 나는 무심하게 볼 수 없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대한민국을 ‘반면교사’ 삼아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일렁였다. 그렇다. 우리는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회, 그 누구도 무엇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개인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155명의 생명을 위해 무려 1200명을 투입하여 24분 만에 전원 구조한 ‘허드슨강의 기적’은 304명의 생명이 눈앞에서 침몰하는 것을 무능하게 지켜보았던 것도 모자라 1000일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진상규명조차 하지 않고 은폐하기에 급급한 ‘세월호의 비극’과 전면 배치된다. 국가 폭력에 쓰러져 317일 만에 사망한 백남기 선생에 관해서도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법·폭력 시위에 가담한’ 사망자와 ‘연명 치료를 하지 않은’ 유가족 책임으로 돌린다. 살인적인 일정과 무리한 노동환경에 처한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해도 개인의 부주의로 처리되지, 그를 사망으로 몰아간 시스템은 책임지지 않는다. 성과급 도입 등 노동자를 쥐어짜는 정책에 반대하여 파업하면 시민을 불편하게 하는 노동자를 탓하지, 불합리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따지지 않는다. 시민이 시위하면,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보다는 그 시위로 발생한 교통체증을 불편해 한다. 시위 참가 인원보다 더 많은 경찰, 더 두꺼운 차벽이 교통체증의 원인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여성이 도심에서 살해를 당하거나, 폭행을 당해도 ‘그러니까 조심을 했어야지’ 혀를 찰 뿐이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우리가 현재 가장 잘하고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책임지지 않는 것’, ‘책임 돌려막기’인가 싶다. 일을 잘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잘못에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바라는 것은 이번 생에서는 바라지 말아야 할 욕심일까?

책임이란 어느 한순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의외의 행동이 아니다. 기독교 신학자 톰 라이트는 ‘허드슨강의 기적’에 관해 ‘위대한 습관의 위력’이라 표현하며 이렇게 서술한다. “미덕이란 누군가 선하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즉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없는 1000가지 작은 결정을 내릴 때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1001번째가 되면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때에, 그들이 말했듯 ‘저절로’ 필요한 일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미덕>, 47쪽) 즉, 우리가 ‘기적’이라 여길 만한 일조차도 ‘책임’이라는 습관(시스템)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이 말을 우리 사회에 적용해보면, 당연하게 갖추어야 할 기본, 즉 ‘습관’ 자체가 없기에 이런 사회가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허드슨강의 기적’이 주는 교훈은 지극히 단순하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함께 살고자 최선을 다할 것. 이 ‘당연’이 무너지니 사람이 죽는다. 죽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게 너무 서럽다.

<오수경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