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은 정리해고에 계산되어 있지 않았다. 이 계산식 안에서 두셋이 해야 할 업무를 혼자 다 맡고 있는 나는 아프면 안 되는 존재다.
어릴 때부터 환절기만 되면, 휴지를 코에 달고 살았다. 올해도 가을 날씨는 변함이 없고, 그저께 출근 준비를 하다가 화장대에 살짝 기대서 재채기를 했다. 재채기를 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면서 화장대 앞으로 고꾸라졌다. 느닷없이 허리에 격통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사무직 노동자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 역시 허리가 썩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걸핏하면 아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아픈 건 평생을 두고 처음이었다. 화장대에 엎드려 숨을 헐떡이다 침대로 가서 도로 누웠다. 도무지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고, 걸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했다. 발을 질질 끌면서 간신히 머리를 말리고 약간 늦게 집을 나섰다.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서 배웅을 했다. 무게 중심이 잘 분산된 고양이의 튼튼한 허리를 보면서 대체 인간은 어쩌다 이족보행을 시작해서 나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는지, 진화의 단면을 이루어낸 선조를 잠시 원망했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의자에 앉을 수가 없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책상을 붙잡고 자리에 앉아서 이를 악물었다. 진짜, 너무 아팠다. 앉아 있는 거 자체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병원에 갔다.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는 걸 본 의사는 엑스레이와 CT 촬영을 하자고 권했다. 아무래도 디스크가 터졌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재채기를 하다가 디스크가 터지다니, 아무리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진짜 디스크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 엑스레이만 찍고 CT를 찍지 않았다. 금요일까지 조금 버텨보고, 그래도 아프면 CT를 찍겠다고 했다. 의사가 돈 때문에 그러는 거냐고 물었다. 당연하죠, 그럼 뭐 때문에 이러겠어요? 일단은 소염제와 근육강화제를 처방받았다.
오래 허리디스크를 앓았던 친구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펄쩍 뛰며 누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최대한 허리에 부담을 주지 앉아야 하니, 당장 집에 가서 누워 있으라는 것이었다. 지인들도 하나같이 집에 가서 누워 있으라고 했다. 입원하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여러분,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누워서는 일을 할 수가 없잖아요.
지난여름, 회사는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한순간에 회사에서 사라졌다. 남은 사람들은 둘 혹은 셋이 했던 일을 혼자 떠맡고 밑도 끝도 없는 야근에 시달렸다. 한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이래서 머슴은 쪼아야 한다는 거구만. 쪼다보면 어떻게든 된다니까”라고 말했다.
도저히 못 할 것 같았던 업무량을 내가 소화하고 있는 걸 보면 지인의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쪼는 걸로 나를 ‘건강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 하나만 뺀다면 말이다. 내가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은 정리해고에 계산되어 있지 않았다. 이 계산식 안에서 두셋이 해야 할 업무를 혼자 다 맡고 있는 나는 아프면 안 되는 존재다.
기업은 ‘잉여인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하는 일 없이 앉아 있고, 조직을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이윤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혁신’을 하기 위해선 잉여인력을 감축하고 재배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경제신문들은 매일같이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틈 하나 없이 빽빽하게 생산성의 도로를 메워야 한다고. 덕분에 ‘필수인력’인 나는 아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내일은 어떻게든 병가를 내고 싶어서 오늘은 더 빡빡하게 일을 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있으니 허리 아래쪽이 무너질 것처럼 아프다. 제일 처음에 도구 사용하겠답시고 이족보행을 시작한 인간도 분명 생산성을 향상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겨운 ‘생산성’.
도무지 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디스크 환자로 오래 산 친구에게 다시 물었다.
“일이 너무 바빠서 치료 안 하면 어떻게 돼?”
“영원히 일을 못 하게 돼.”
<이서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
![[오늘을 생각한다]](http://img.khan.co.kr/spko/ranking/weekly/140098/20240430104625_14009801.jpg)
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이채양명주’ 의제로 올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