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우리의 언어를 언제야 찾을 수 있을까

과거에 외쳤던 그 어떤 구호도 우리 세대의 마음 속에 응어리진 그 무언가를 건드리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 우리의 현실을 바꿀 언어를 찾게 될까?

몇 주 전 한 일간지에 연재물을 쓰던 지인으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소재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운영자의 관점을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어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질문을 듣자마자 단호한 말투로 확신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그룹을 만든 지 2년이 되니 처음의 느낌이 잘 기억나지 않았고, 둘째는 수천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다 알 수 없으며, 셋째는 일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이 중 세 번째가 ‘일못’ 현상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대개의 사람들은 직장에서 일 못함으로 인해 비난을 받다가 마음의 응어리를 안고 일못유니온을 찾는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일 못함을 답답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뿐이 아니다. ‘일못’들은 스펙 쌓기의 공허함과 고됨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공허한 스펙으로 치장한 이들보다 더 능력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다룬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무엇이 ‘일못’들을 이렇게 복잡한 사람들로 만들었을까? 내 경험은 이렇다. 일터에서 나는 기본기가 탄탄한 동시에 창의력 있는 인재가 되기를 요구받았다. 주어진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는 동시에 매사에 주인의식을 갖기도 해야 했다. 이것은 학교를 떠나 사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은 나름의 재사회화 과정이라 할 수도 있는데, 내게 한국 사회의 재사회화는 혼란스럽기만 한 과정이었다. 직장생활에 최근까지 시달리던 한 친구는 자신의 최근 생활을 ‘영혼을 빼놓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 친구를 더 괴롭게 하는 것은 ‘영혼이 담긴 일’을 요구하는 직장 상사들이었다.

아마도 한국 경제에 천지개벽 정도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당분간 현실은 이대로일 것이다. 사회 초년생들은 계속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상사들에게 시달릴 것이고, 그들은 자기보다 더 일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분노할 것이다. 직장인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자조하듯 묘사하는 만화를 보며 웃다가도, 뭔가 해결되지 않은 찜찜함을 느낄 것이다. 대학생들은 너무나도 억울해 시위에 나갔다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죽은 한 농민을 보며 슬퍼하다가도, 자신이 그와 같이 힘 없는 상태에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될 것이다. 안정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이들은 양쪽 끝을 오가며 특별한 정체성 없이 살게 될 것이다.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것 같은 감각은 유령처럼 우리 주위를 맴돌 것이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때때로 어떤 말은 세상을 바꾼다.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을 때, 1987년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쳤을 때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있었고,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함께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우리를 위한 언어를 찾지 못했다. ‘민주화’는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평등’,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언어는 더 이상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말도, 억울하게 죽은 누군가의 이름을 울먹이며 되뇌는 것도 입김과 함께 흩어질 뿐이다. 과거에 외쳤던 그 어떤 구호도 우리 세대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그 무언가를 건드리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 우리의 현실을 바꿀 언어를 찾게 될까? 아니 그전에, 우리는 언제 우리를 표현할 단어를 찾게 될까? 외쳐 봐도 소용없는 구호의 사막 속에서 누가 우리에게 길을 알려줄까? 확실한 것은 남이 던져주는 대답은 언제나 불완전한 것으로 느껴질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여정훈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