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장기 백수 18만명’ 시대의 저급한 대책

나처럼 전문가가 아닌 백수도 이제는 ‘일자리 18만개’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가 노동문제의 더 중요한 의제임을 알겠다.

“아 취업하기 싫다.”

‘장기 백수 18만명’ 시대. 장기 백수인 내가 헛소리를 한 까닭은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그룹 게시물의 추천 다큐멘터리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는 9월 11일 방영된 ‘sbs 스페셜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였다. 제목대로 ‘젊은 것’에 대한 얘기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초입인 신입사원들이자, 성인들임에도 물건처럼 ‘것’으로 불리는 이들의 얘기다. 대한민국에서 취업에 걸리는 기간이 평균 13개월이나 된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신입사원 100명 중 27명이 입사한 지 1년도 안 되어서 사표를 쓰는지, 그들의 삶의 문제란 무엇인지 취재한 내용이었다. 제작진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다가 ‘이렇게는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며’ 조기 퇴사를 선택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이들의 증언은 익숙한 내용이었다.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인한 대한민국 회사들의 긴 노동시간, 상사의 폭언 문제,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도 신입사원이 상사를 대신해 버튼을 눌렀네 안 눌렀네 하며 사내 예절까지 운운하며 따지는 기이한 회사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대체로 복장 터지는 회사생활 얘기의 향연이었다. 결국 방송 내용을 요약하자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전근대적 사고에 기반해 운영되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이 문제라는 얘기였다. 소위 ‘글로벌하다’는 기업들조차 ‘글로벌한 시대’의 기본 가치인 다양성이나 평등, 인권 존중과 같은 가치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했다.

한편 방송에 비치지 않았지만 우리는 소위 ‘대기업 후려치기’로 형편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중소기업에서 이보다 더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안다. 그들 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며,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다. 게다가 1인 가구가 아닌 경우에는 퇴직 후 당장 봉착할 가족들의 생계 문제를 걱정해 울며 겨자먹기로 봉건시대 농노처럼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국가는 이 거대한 취업난을 해결할 적극적인 의지가 정말 있는 것일까? ‘장기 백수 18만명’이라는 통계수치를 보면 단순하게 ‘일자리 18만개 빨리 만들어야겠네’, ‘빨리 통계수치 떨어뜨려야 하는데!’라는 생각뿐인 것 같다.(사실 이 생각도 하는지 의문스럽다.) 나처럼 전문가가 아닌 백수도 이제는 ‘일자리 18만개’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가 노동문제의 더 중요한 의제임을 알겠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시간제 일자리’나 ‘임금피크제’ 같은, 노동자 후려치는 저급한 대책만 들고 나온다.

오히려 노동문제는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는 게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법이 잘 지켜져야겠지만….) 예를 들면 여전히 주말 업무가 많지만, 그래도 주 5일제가 20년 전에 비해 자리를 잡았듯이 이제는 주 4일제 문화를 만드는 거다. 일단 출근하면 야근을 강요당할 수 있으니 아예 금요일 출근을 없애자. 그러면 연평균 노동시간도 OECD 선진국 수준이 된다.

물론 당장 주 4일제 하자고 하면 중소기업 죽는 법이라고 또 할 테니, 차라리 법으로 정해서 1년마다 매주 금요일 퇴근시간을 1시간씩 일찍 당기자는 거다. 하루 8시간 노동이 법정 노동시간이니 국회의원들 임기 두 번만 지나가면(8년) 대한민국도 주 4일 출근제가 된다. 아니면 일터는 회사의 사적 소유 공간이라기보다 사람들이 함께 일하며 지내는 공공 영역이므로 사측만이 아닌 노동조합에서도 일정 비율 이상 신입사원을 뽑게 하는 법을 만드는 거다. 특정 노조 조합원 자격을 채용 자격으로 하는 조합원 배타적 고용에 대한 협정(closed shop agreement)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거다. 회사에 노동조합 가입자가 많아지면 그래도 많은 노동자들이 회사의 갑질에 혼자서 당하게만 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주 4일제라니, 생각만 해도 회사 다닐 맛 난다. OECD 통계상 노동시간이 적을수록 생산력도 높아지는데, 이런 제도는 도대체 왜 도입이 안 될까?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네 정책 때문에 일할 흥이 다 깨져버렸잖아. 정부, 책임져! (취업준비생에게 축복을!)

<없음벨라 일 못하는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