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모두가 행복하자는 게 페미니즘”

유인경 작가, “명절증후군 줄일려면 시부모님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한국 사회에서 명절은 갈등의 화약고다. 옛 것과 새것, 세대와 세대, 남자와 여자가 부딪 친다. 잠복해 있던 어긋난 관계들의 긴장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시간이다. 특히 ‘명절증 후군’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일 정도로 며느리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상수가 됐다. 명절을 대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생각 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유인경 작가(전 <경향신문> 기자)는 “여성들이 교과서로 치면 18과 정도 나가 있다면, 남편은 7, 부모님들은 3 정도 나가 있다. 온도 차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1년에 두 번만 그 온도 차를 견디면 될까. 유 작가는 관계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할 때 관계는 지속가능하며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없는 에너지로 그저 견디며 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일방적인 억울함과 피해 의식만 깊어진다. 비단 명절만이 아니라 일상의 관계를 지속가능하게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 작가는 어긋나고 충돌하는 관계들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누군가의 밥그릇을 빼앗고 서로 경쟁하고 우위에 서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곧 추석인데, 명절 때마다 가부장제 관습을 둘러 싸고 갈등이 심화된다.
“명절은 갈등이 총집합되는 때이다. 나는 부부관계든 시댁이든 친구관계든 모든 관계 는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결혼했을 때는 내가 결혼한 사실 하나 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철없이 명절 전에 시댁에 먼저 혼자 가 있고 그랬다. 결혼하고 처음이 중요한데, 본인이 자신의 성격을 파악 못하고 그 이상으로 하게 되면 그 시간이 쌓여 나중에는 한이 맺히게 되고 피해의식이 커지게 된다. 물리적인 것보다는 심리적인 스트레스와 부당함이 크다. 언론에서 좀 부풀린 측면도 있지만, 며느리 명절증후군이라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온다. 며느리들은 ‘나는 왜 본 적도 없는 시증조할아버지를 위해서 전을 부치고 일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부치는 전이 무슨 의미가 있나. 처음부터 할 수 있는 패만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남편이나 시댁에 ‘나는 이런 사람 이다’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게 필요하다. 관습에 맞춰 남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하고 바꾸는 게 좋다. 서로 너무 보는 시각 차가 크고 대차대조표가 다르다. 여성들 이 교과서로 치면 18과 정도 나가 있고, 남편은 7, 부모님들은 3, 이 정도 스텝이어서 온도 차가 있다. 양쪽이 다 피곤할 바에야 시부모님이 한 번 넘어가시더라도 한 번쯤 허심 탄회하게 문고리를 열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달라진다.”

아내 역할, 엄마 역할, 며느리 역할 등 ‘일·가정 양 립’이라는 기치 아래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 하는 역할이 많다.
“요즘 페미니즘이 화두다. 직장여성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많이 나간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일할 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점 이다. 직장여성들이 나에게 묻는 것은 ‘일· 가정 양립’이다. 양립? 안 된다. 직장에서 일을 80 이상 안하면 월급도둑이라고 하지 누가 남겨두나. 그래서 여성들이 전투하듯이 사는 것이다. 30년 전에 내가 고민했던 일들이 하나도 해결이 안 됐다. 페미니즘은 저출산도 해결할 수 있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행복할 수 있다면 저출산도 해결된다. 그러나 국가는 모든 부담을 엄마의 몫, 여자의 몫으로 돌린다. 정부의 정책은 둘째·셋째 낳으면 돈 준다는 건데, 이는 탁상공론이다. 한·중· 일이 가사분담을 어떻게 하는지 조사한 적이 있다. 한국처럼 열악한 곳이 없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여자들이 일하는 것 자체를 당연히 여기고, 여성 임원 비율도 높다. 일본은 일본 경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기치 아래 여성들이 경력단절이 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했다. 지자체에서 ‘왜 남성이 집안일을 해야 하느냐’를 가르치더라. 60·70대 남성들까지 와서 그런 강의를 듣는다.”

한국 사회는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성 역할이 나눠져 있다.
“농담삼아 하는 말인데, 빅뱅의 GD가 결혼 해서 육아휴직을 가져야 한다. 일본에 ‘이쿠맨’ 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육아를 적극적으로 하는 남편을 말한다. 잡지도 나오는데, 현빈·조인성처럼 잘생긴 젊은 아빠들이 정장과 잘 어울리는 아이싸개 이런 걸 광고한다. 그게 돈이 되는 사회다. 남자들이 찌질해서 육아를 한다? 이런 관념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는 3년 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했다. 1987년 1월에 퇴사하고, 1990년 2월에 <경향신문>에 들어갔다. 무려 3년을 넘게 전업주부로 생활했다. 나는 이 경력단절기가 좋았다. 에너지도 비축됐고, 아이를 3년 동안 키우면서 애착관계도 잘 형성됐다. 또다시 직장에 나왔을 때는 다시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물론 나는 재취업이 잘된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다. 어쨌든 남자들도 경력단절 기간이 필요하다. 사회의 시선이 전업주부 3년의 경험을 우습게 아는데, 나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남자도 아이 기저귀도 갈아보고 유치·영구치 따지면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아이의 심리상태도 알아 보는 소중한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해 여혐 논란, 올해 페미니즘 열풍까지 오늘 날 한국 사회의 남녀 간 시각 차가 크다.
“정서까지 양성평등이 되려면 700년이 걸린다는 보고서도 있더라. 거의 지구 멸망을 내다보는 수준 아닌가. 미국도 지난 대선에서 똑똑한 여자 힐러리 클린턴보다는 흑인 남성 오바마를 택했다. 아직까지도 깊이 잠재돼 있다. 담배는 단칼에 끊어지지만 태도나 정서는 단칼에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 큼 유의미한 변화를 위해서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가 지난해 각료의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했다. 당시 이유를 물으니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라고 답했다. 우리도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 일단 문을 열어 숫자를 늘리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비례대표에 여성의 몫을 할당했다. 그렇게 국회로 간 여성의원들이 일을 잘해 또 지역구로 내려가면서 지역구의 여성의원들도 늘었다. 이런 식으로 위에서 제도를 바꾸면 정말로 많이 바뀔 수 있다.”

페미니즘 열풍, 어떻게 보나.
“딸을 키우면서 진짜 ‘양성평등’이 뭘까라는 생각을 늘 했다. 만약 딸을 직업적으로 능 력 있는 여성으로 키웠다면, 그래서 소위 ‘외조’하는 사위를 맞는다면 행복할까. 그건 아 닌 것 같았다. 그게 적성에 맞아서 하는 거 라면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한쪽이 헌신 하고 희생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전반적으로 억울함이 없는 사회, 그게 양성평등이 이 루어진 사회가 아닌가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행복한 일이 뭔지를 알고 그것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으면 좋겠다. 남자도 살림이 잘 맞고 좋으면 그걸 하면 된다. 남자 이기 때문에 용감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으면 한다. 일본에 울음방이라는 게 있다. 슬 픈 동영상을 보고 울고만 가는 방이다. 남자들이 울 수 있는 자리는 없지 않나. 남자들의 비애, 아픔에 대해서도 아는 게 필요하다. 페미니즘은 서로 잘하는 일, 즐거운 일, 좋은 일을 나누는 과정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내가 행복하기 위한 페미니즘이지 누구를 박해하거나 무언가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싸움이 아니다. 남자들도 페미니즘을 이해해야 엄마를 이해하고 딸을 이해하고 여성동료를 이해할 수 있다. 서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을 배워야 한다.”

<글·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