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왜 며느리가 시댁에 잘 보여야 돼?”

‘일 잘하는 며느리’, ‘예쁜 며느리’, ‘착한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압력은 이 젊은 여성들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

친구가 SNS에 ‘맏며느리감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글을 썼다. 나는 발끈해서 너야말로 맏며느리의 진정한 귀감이라고, 모두 널 모범으로 삼아 어떤 며느리가 되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고 했다. 친구는 웃었다.

내 친구는 누나가 셋이나 있는 집의 막내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막내와 결혼했지만 한국 사회에선 이런 사람을 ‘맏며느리’라고 부른다. 친구의 시댁은 경상도고, 늦둥이 아들은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몇 년 전 일이다. 친구가 전화를 해서 울먹였다. 그때 친구의 아이는 두 살인가 세 살이었다. 아마 추석이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시아버지가 살 못 빼면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살이 너무 쪄서 이웃들 보기 부끄럽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분기탱천해서 뭐 그런 시아버지가 다 있냐고, 그냥 내려가지 말아버리라고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착한 며느리’가 되어보고 싶었던 친구는 시아버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 달이 넘도록 했다. 살이 좀 빠지고 나자 우울증이 찾아왔다. 친구는 다이어트를 포기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이 안 빠질 것 같으니, 시댁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두 번의 명절 동안 며느리 얼굴도 손주 얼굴도 못 본 시아버지는 약이 바짝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하는 수 없이’ 맏며느리에게 살 안 빼도 괜찮으니 다음 명절에는 내려오라고 백기를 들었다.

친구는 내려가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 이번에 내려가면 어른들한테 엄청 잔소리 들을 거야.”

남편은 그럴 리가 없다고 펄쩍 뛰었다고 한다. 그 잔소리에서 나를 막아줘야 한다고 남편에게 말하던 친구는 ‘우리집 어른들의 교양’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남편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지쳐서 남편을 설득하는 대신 제안을 했다.

“그럼 내가 그런 소리를 들으면 한 번 들을 때마다 네가 나한테 만원씩 주는 걸로 하자.”

정말 그런 말을 안 들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남편은 흔쾌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명절에 시댁에 갈 때마다 친구는 못해도 20만원씩을 챙겨서 돌아왔다. 막상 돈이 걸리게 되자, 그냥 스쳐 지났던 말들이 남편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헐레벌떡 뛰어다니며 잔소리를 못하게 막았고, 어른들은 ‘네가 얼마나 남편을 잡아댔으면 남자가 저러냐’며 잔소리를 더 심하게 해댔다. 결국 고모 한 분은 친구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남편은 다급하게 잠긴 방문을 두드리며, “고모, 거기서 뭐해! 빨리 나와! 이상한 말 하는 거 아니지!”를 외쳐댔지만, 고모의 잔소리는 더욱 가열차졌고 친구는 조용히 손가락을 꼽았다. 문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열 손가락을 펼쳐보이자, 남편은 침통한 표정으로 다시 지갑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명절에는 성묘에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하자, 남편은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다가 눈물까지 났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는데,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이렇게 아이러니일 수가 없다. 친구들은 죄다 고통에 휩싸여 있다. ‘일 잘하는 며느리’, ‘예쁜 며느리’, ‘착한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압력은 이 젊은 여성들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

이젠 명절에 시댁에 가다 말다 한다는 내 친구는 결혼과 시댁에 대해 고민하는 다른 친구에게 능청스럽게 말했다.

“왜 며느리가 시댁에 잘 보여야 돼? 시댁이랑 사이 나빠도 며느리는 손해 보는 거 없어. 남편만 손해지.”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아마 내 친구는 그 집 시아버지 입장에서는 일도 안 하고, 사근사근하지도 못하고, 살도 안 빼는 변변치 못한 ‘일 못하는 며느리’일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일 못하는 사람’ 대표로 글을 쓰면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안할 수가 있겠는가.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배우고 따라 익혀야 할 헬조선 맏며느리의 귀감이다. 앉으면 졸고 걸으면 넘어지고 먹으면 흘리고 들고 가면 쏟는 칠푼이 인생. 직장을 다니며 소설을 쓴다.

<이서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