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의 눈]막장으로 가는 상식의 안전망

한 달에 한 번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자괴감이 크다. 이 시대에 문화적인 한 코드를 짚어내려고 노력 중이나, 언제나 문학을 비롯한 문화 장르의 호기심은 뒷전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글을 쓴다는 것이 이 사회의 어떤 잉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사회와 국가는 너무나 이상한 곳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문화는 사회의 압축적인 상징이고, 글은 도구라 여기고, 무기라 알고 살아온 거창한 신념이나 개념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런 거시적인 생각을 미뤄두고라도 지금의 사회는 뭘 압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고, 산다는 것의 목적은 실용만 있는 것이며, 오랫동안 우리가 꿈꾸어 온 이상은 아니더라도 짐작과 상식이 남아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원한다는 것이 꿈꾸지 못할 사치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조영남씨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그의 사건에서 예술을 다루는 어떤 윤리적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기보다 기사 헤드라인에서 읽었던 자극적이고 의도적인 수치에 우리는 화가 난 것이 아닌가 자문해볼 일이다. 그래서 이 논란은 굉장히 단순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끝이 나지 않는 것이다. 처음 접했던 기사의 내용은 수천만원씩에 파는 그림을 몇십만원에 하청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 몇천만원과 몇십만원의 수치가 처음 우리를 화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 듯, 페인팅 작가 중에 그런 작가는 없다. 작가는 아이디어를 제공만 하고 실제 작업은 보조들이 한다는 관례를 들먹이는 것은 열정으로 작업을 하는 많은 작가를 욕보이는 말이다.

사실관계가 맞는지 알 길 없으나 기사에서 전해진 대로만 본다면 그는 용서받을 길 없는 파렴치한이다. 우리는 잘못한 일을 왜 사과나 용서를 빌 수도 없는 사회가 되었나, 무조건 핑계대고 미루고 남의 일처럼 딴청이다. 기자회견을 한다던 그는 사회의 여러 강력 사건에 슬그머니 모양을 감추는 길을 택한 것 같다.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한다면 용서를 빌어라. 예술은 그런 쿨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는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는데 그릴 능력은 없고, 그림 팔아 돈도 벌고 싶어서 못된 짓을 했다고 솔직하게 사과를 해 보아라. 누가 더 욕을 하겠는가. 예술을 하면 예술을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선생 성폭행 사건을 접하고선 이 사회가 향해 가는 막장의 끝을 본 느낌이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에 울분과 공포는 더 크기만 하다. 사건의 내용이야 수백건의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으니 할 필요가 없을 테고, 좀 더 다른 얘기를 논해야 하겠다. 피해자의 신상이 시간이 지날수록 교묘하게 파헤쳐지는 것을 보면서, 피해자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는 기사를 보면서 사건 자체보다도 더 큰 공분을 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모호하던 지명이나 피해자 신상에 관한 것들이 교묘하게 구체화되어 이제는 흑산도, 올 초 부임한 20대 여선생 등의 키워드를 언론이 아무렇지 않게 양산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큰 배려와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에게로 사건의 광포함을, 사람들의 관심을 돌려놓은 듯하다. 윤리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그마저도 준비되지 못한 기자나 언론이 과연 어떤 진실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는지 낭패감만 는다. 자극적인 기사나 헤드라인을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기사의 차별을 구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기자들 중엔 참, 못난 놈이 많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뭔가를 쓸 수 없을 땐 쓰지 않는 것도 글을 쓰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그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백가흠 소설가>

백가흠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