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눈]불가능의 예술

“북한 규탄은 쉽다.” 5월 26일 제주포럼에서 짐 볼저 전 뉴질랜드 총리가 한 말이다. 대화로 해법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규탄만 하는 정치에 대한 점잖은 경고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진전된 성찰을 본 적이 없다. 정치권은 너 나 할 것 없이 안보를 강조한다. 안보를 말하며 으쓱한다. 으쓱한 뒤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정치인들이 안보, 안보, 안보를 외치는 동안 연일 거대한 방산비리 사건이 터진다. 이것은 개그인가, 비극인가. 도대체 안보는 왜 필요한가. 안보의 현재는 평화이고, 안보의 미래는 통일이다. 평화와 미래의 길에서 통일에 대한 비전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투쟁하는 것은 한국 정치인의 기본적인 소명이다.

일본 정치학자 스기타 아쓰시 교수는 ‘경제에 의한 정치 식민지화’를 우려한다. 경제를 말하면 인기를 좀 얻을 것 같으니 모두 경제 타령만 늘어놓는다. 무릇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정치인이 본연의 소명을 잊고 마치 자신이 경제의 주체인 양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용감한 정치인이라면 현실의 민감한 문제에 대해 두려움 없이 발언할 수 있어야 하며,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을 꾸짖을 줄도 알아야 한다.

20대 국회의 첫 번째 화두는 용기다. 국민들은 용기 있는 정치인을 원한다. 여론의 눈치나 보면서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정치인은 더 이상 이 거대한 전환기의 속도를 감당할 수 없다. 정치인이 시대의 속도를 감당할 보편적 위로와 현실의 첨예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정치인, 정당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이번 총선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무능한 정치, 오만한 권력에 대한 심판이 점점 더 빨라질 것이라는 예고다. 안보와 경제를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담대한 비전 없이 안보나 경제를 말하는 정치인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저 거대한 쓰레기더미 위를 배회하는 쉬파리의 초라한 소음일 뿐 우리가 가야 할 어떤 지점을 상징하는 신호가 될 수 없다.

최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을 방문해 그 하나의 ‘소음’을 더했다. 무너진 여권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혁명적 변화의 길로 나서는 대신 ‘돌아온 대타’ 앞에 굽신거린다. 반 총장은 여기저기서 대권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다. 성찰이 없다. 반 총장은 대권을 꿈꾸기 이전에 <이코노미스트>가 “역대 가장 무능한 사무총장”이라고 평가한 이유를 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갈등과 분쟁의 현장에서 약자의 편에 서야 할 유엔의 수장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충실했던 그 비겁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 최근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체코의 벨벳혁명을 이끈 바츨라프 하벨 전 대통령의 위대한 연설문을 모은 책 <불가능의 예술>을 펴냈다. 그는 “정치는 책임감과 존재의 복잡성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담당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위대함은 비루함에 깃드는 법이다. 진정성과 용기를 갖고, 권모술수를 넘어 불가능을 꿈꿀 때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일 수 있습니다. 특히 ‘가능’에 투기, 계산, 모의, 뒷거래, 조작이 포함된다면 그러합니다.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자신과 세계를 향상시키는 예술일 수 있습니다.”(1990년 1월 1일 신년사 가운데)

유승찬의 눈

지금 우리는 1990년 소비에트 붕괴의 속도를 뛰어넘는 전 지구적인 혁명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20대 국회에 등원하는 300명의 국회의원들에게 하벨의 메시지를 정독할 것을 권한다.

<유승찬 소셜미디어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