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스포트라이트>-업무특성상 지키기 어려운 근로시간

진실을 캐는 데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집요함을 기다릴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득권에 맞설 수 있는 정의감과 용기가 필요하다.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이 시대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캐묻는다. 이 영화는 미국의 가톨릭 신부들이 수십 년간 미성년자를 성추행하고, 이를 교회가 조직적으로 감췄다는 내용을 폭로해 퓰리처상을 받았던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팀’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올해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 내 탐사보도팀이다. 4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특종기사를 위해 짧게는 4개월, 길게는 1년씩 취재한다. 게오건 신부가 30년간 80여명의 미성년자를 성추행했고, 이 사실을 추기경도 알고 있다는 내용의 칼럼이 한 신문에 실린다. 스포트라이트팀은 이 칼럼을 근거로 사건을 파헤친다. 미국에서 가장 가톨릭 전통이 깊은 도시에 위치한 신문사로, 구독자의 53%가 가톨릭 신자인 <보스턴 글로브>로서는 취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사건에 연루됐던 변호인도, 피해자도, 지역 유지들도 꺼내기를 싫어하는 주제다. 하지만 4명의 스포트라이트 팀원은 도서관을 뒤져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취재원들을 설득하면서 마침내 진실을 캐낸다.

성추행 피해자 변호사인 개러비디언은 식당 밥 먹는 자리에서도 질문을 퍼붓는 레젠데스 기자에게 묻는다. “열심히 일하시네요. 결혼했어요? 하루 종일 일하는데 (집에서) 뭐라고 안 해요?” “뭐라고 합니다(웃음)” “그래서 나는 결혼을 안 하죠. 너무 바쁘거든요. 내 일은 너무 소중해요.”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주간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근무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다양한 예외조항을 둬서 초과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언론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기 힘든 직종 중 하나다. 시시때때로 터지는 사건을 쫓아다녀야 하는 특성상 출퇴근시간과 근무시간을 따르기 어렵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은 한국 노동자의 공통적인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1인당 평균 실제 연간 근로시간’을 보면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이 2124시간으로 두 번째로 많다. 한국보다 근무시간이 더 긴 나라는 멕시코밖에 없다. OECD 회원국 평균 근로시간이 1770시간이므로 한국인 노동자는 연간 354시간, 주당 평균 6.8시간을 더 일한다. 근로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는 독일로 1371시간에 불과하다. 일본(1729시간)과 비교해도 한국 노동자는 연간 395시간 더 일한다. 거의 모든 직종에서 초과근로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일을 많이하는 것이 미덕이 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과다한 근무는 근무시간당 생산성이 낮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긴 노동시간에 따른 ‘시간빈곤’은 내수산업을 위축시킨다. 소비나 여가를 즐길 시간이 없다 보니 돈쓰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4년 전국 10세 이상 국민의 하루 평균 ‘상품 및 서비스 구입시간(소비활동시간)’은 11분으로 집계됐다. 이는 10년 전인 2004년과 똑같은 수준이다. 반면 하루 평균 여가생활시간은 5시간 13분에서 4시간 49분으로 되레 24분 줄었다. 2004년부터 주5일 근무제 등이 실시됐지만 실질적인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감축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화 속 경제

업무는 과중하지만 신문산업이 위축되면서 언론인들의 고용은 더 불안해졌다. 새 편집국장인 마티 배런에게 기자들이 묻는다. “(기자들을) 자를 건가요?” 그는 이렇게 답한다. “그럴 생각입니다만, 지금 내 관심사는 신문을 독자에게 필요하게 만드는 겁니다.” 마티 배런이 생각한 ‘독자들에게 필요한 신문’은 인터넷 강화나 편집 강화가 아니었다. 모두가 꺼리는 사회의 금기를 건드리는 ‘특종’이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