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시티즌포>-보호에는 둔감한 ‘프라이버시의 역설’

2013년 1월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인 로라 포이트라스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익명의 제보자 ID는 ‘시티즌포(CITIZENFOUR)’. 그는 자신이 전직 CIA 요원이라고 밝히며 미 국가안보국(NSA)이 미국인과 외국인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감청을 하고 있다고 폭로한다. 포이트라스 감독은 제보자에게 폭로과정을 영상으로 찍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해서 제작된 영화가 포이트라스 감독의 <시티즌포>다.

제보자가 지목한 영국 <가디언>의 프리랜서 기자 글렌 그린월드와 포이트라스 감독, 홍콩의 한 호텔방에 모인다. 제보자의 이름은 에드워드 스노든. 그에 따르면 NSA는 AT&T 같은 통신사는 물론 야후,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 9개 인터넷 회사의 서버에 직접 접속해 음성, 영상, 사진, 이메일 문서를 무차별 수집해갔다. 심지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우방국의 수장까지 도·감청하고 있었다.

<시티즌포>는 스노든이 기밀을 폭로하는 일주일을 찍은 다큐멘터리다. 대역 없이 폭로 당사자들이 그대로 나온다. 스노든이 기밀을 하나씩 털어놓고 그린월드가 보도하는 과정도 촘촘히 담았다. 국가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개인의 외로움, 두려움도 가감없이 드러난다. 유럽연합(EU)의 청문회에 나선 암호 이메일 업체 사장인 레빈슨은 개인정보에 대한 중요성을 이같이 말한다. “프라이버시는 함부로 침해하면 안 됩니다. 프라이버시가 없다면 어떻게 자유로운 토론을 할 것이며, 자유로운 표현의 권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개인정보 공개를 꺼릴수록 개인정보의 가치가 커진다. 상업적 가치가 생기고, 거래가 이뤄진다. 이는 새로운 경제형태를 만드는데, ‘프라이버시 경제’라 부른다. 사용자들이 개인정보를 포털사나 통신사가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직접 관리하면서 정보공개 여부와 이에 따른 혜택에 대한 선택권을 갖는 경제를 말한다. 일부 통신사는 통신사용자들에게 기프티콘을 제공하며 자신들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사용하는 것에 동의해 달라고 제안한다. 통신사들이 이런 정보를 보험사 등에 팔아 수익을 남긴다. 만약 이런 정보를 특정기관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프라이버시 경제는 형성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프라이버시 보호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 생각과 행동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을 ‘프라이버시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젠스 그로스클래그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프라이버시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고 한 응답자의 63%가 암호기술을 사용한 적이 없고, 44%는 이메일 필터링을 사용하지 않았다. 또 50%는 민감한 정보를 담은 서류를 파기하는 데 종이분쇄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피츠버그의 대학생 47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실험을 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퀴즈 성적과 체중에 대한 정보를 1달러 이하에 팔았다. 반면 이런 정보를 보호하는 데는 1달러 쓰는 것도 아까워했다. 즉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지만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투자에 인색하고, 아주 작은 이득이 주어지면 쉽게 팔아버린다.

영화 속 경제

정보기관의 마구잡이 개인정보 수집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은 것도 ‘프라이버시의 역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암호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애플바움은 “예전에는 자유라고 표현했던 것을 요즘은 프라이버시라고 표현한다. 프라이버시를 잃으면 자유 그 자체를 잃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수동적 감시에 대해서도 착각하고 있는데, 감시는 결국 통제”라고 말한다. <시티즌포>를 보면 최근 통과된 테러방지법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 법은 미국의 애국자법(테러대책법)과 매우 닮았다. 애국자법은 지난해 6월, 도입 14년 만에 폐지됐다. 스노든이 폭로한 NSA 파문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