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빅쇼트>-미국 주택시장 버블의 원인 ‘닌자대출’

선진국과 신흥국의 동시다발적인 경기침체, 중국의 부진, 엄청난 수출감소, 마이너스 금리, 기록적인 저유가 등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저성장 경제가 진행 중이다. 경제학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제로성장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원죄는 2007년 금융위기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선택은 ‘돈풀기’였지만 9년이 지난 지금 글로벌 경제는 유동성에 갇혀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는 금융위기에 대한 이야기다. <빅쇼트>의 원작은 마이클 루이스의 소설이다. 마이클 루이스는 <머니볼>의 저자다.

영화 <빅쇼트>는 2005년부터 시작한다. 은행이 개인들에게 제로금리로 엄청난 주택담보대출을 내주고, 개인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들이던 2005년, 월스트리트 주변을 맴도는 각기 다른 4팀의 투자자들은 이 파티에 의문점을 품는다. 의사 출신 펀드매니저인 마이클 버리, 헤지펀드 매니저인 마크바움, 도이체방크의 채권 담당자인 자레드 베넷, 풋내기 청년투자자들인 제이미와 찰리 등이다.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기 위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을 마구 내줬고, 투자회사는 이 대출채권을 매입한 뒤, 이를 기초로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발행한다. 버리는 CDO의 기초가 되는 주택담보대출 채권이 부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마크바움은 자레드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뒤 주택버블을 확인한다. 청년투자자들도 우연히 주택대출이 부실화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들은 신용부도스와프(CDS)를 매입해 하락장에 베팅을 한다. CDS란 금융사가 보유한 금융상품이 부도가 날 때를 대비해 보험사에 드는 일종의 금융보험이다. 금융사는 보험사에 보험료(프리미엄)를 내고, 금융사는 문제가 발생할 때 보험금을 지급한다. 2007년 4월 드디어 운명의 순간을 맞는다.

영화 <빅쇼트>에는 금융용어가 많이 나온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결정적 용어 하나를 집으라면 단연 ‘닌자대출’이다. ‘닌자대출’(NINJA loan)이란 수입도 직장도 재산도 없는(No Income, No Job, No Assets) 이들에게 해주는 대출을 말한다. 금융위기 직전 미국 은행들이 취급한 닌자론은 소비자가 다른 서류 없이 자신의 연봉만 밝히면 은행이 돈을 내줬다. 10년 뒤 원금을 일시에 상환하는 조건으로 10년간 이자만 상환하도록 했다. 초기의 이자는 매우 낮았다. 이자율은 2년 뒤 재산정되지만 차입자들은 별 걱정이 없었다. 이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집값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른 집을 담보로 또 다른 대출이 가능했다. 대출이자 수입이 늘어나면서 은행원들은 큰 돈을 번다. 은행이 대출을 거부하는 일은 없었다. 금요일 대출채권이 생기면 다음 월요일 투자은행들이 그 대출채권을 무조건 사갔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컸다. 영화 속 스트리퍼는 “집값의 5%만 내면 은행 대출로 집을 살 수 있다. 난 집 5채와 콘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LTV가 95%에 달한다는 얘기다.

훗날 워싱턴포스트(WP)는 닌자론이 2005년부터 시작된 미국 주택시장 버블의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닌자론으로 인해 모기지 시장은 4년 만에 9조5000억 달러 규모로 커졌고, 미국 가계의 주택소유 비중은 70%에 육박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집값이 정체되고, 금리가 올라가면서 차입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빚을 갚지 못하는 차입자들의 집은 은행에 넘어갔고, 이들은 야외 텐트로 쫓겨났다. 미국에서만 800만명이 직장을 잃었고 600만명이 집을 잃었다. 다른 나라들도 같이 휘청거렸다. 최경환 경제팀은 부동산경기 부양을 위해 대출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혹시 한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에도 그 틈을 타 닌자가 잠입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를 일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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