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증거 없는 정부의 대북논리 위험만 키운다

‘초코파이가 핵·미사일로 돌아왔다!’ 대북 봉쇄, 압박론자의 머릿속에는 지금쯤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성공단 북측 일꾼들에게 기업들은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하루 2~4개씩 나눠줬다. 그런데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내다팔아서 돈벌이 수단이 되곤 하자 2014년에 지급을 중단시켰다. 남북 교류와 화해·협력의 작은 상징물이던 초코파이는 그렇게 개성공단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개성공단도 문을 닫고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뭐든 주면 핵·미사일이 된다는 정부
애당초 미국이나 다수 우파들에게 경제협력이나 민간 차원 지원은 목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금강산, 개성 관광도 그랬다. 2008년 7월 관광객 총격 사망사건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가 대북관광을 접었을 때도 진짜 이유는 안전이 아니라 ‘퍼주기’에 있었다.

그나마 개성공단이 2004년 출범 이래 11년을 버틴 것은 남측 기업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 덕분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각으로는 퍼주기에 다름 아닌 인도적 대북지원도 모두 멈춰섰다. 인도적 지원물품은 종종 전용 논란을 샀다.

식량자원인 쌀 지원은 늘 의심을 샀다. 군부로 흘러들어갔다는 첩보를 토대로 밀가루나 옥수수로 대체됐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영유아 이유식으로 밀가루를 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 대북지원에 원칙은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못자리용 비닐 지원도 이명박 정부 때 중단됐다. 참여정부까지 북한 재래농법을 현대식 이앙법으로 바꾸려고 비닐을 지원했고, 수확량이 늘어 효과를 봤다. 그러나 비닐을 겨울철 한기를 막는 군대 막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다고 해 지원이 끊기기도 했다. 수인성 전염병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액제(링거) 품질 안정화를 위해 동물실험실도 짓다가 이전 정부 반대로 중단된 적도 있다. 진단용 엑스레이 장비도 한동안 반입이 중단됐다가 풀어줬다.

대북지원 물품이나 교류·협력, 경협 등 남북관계에서 거의 모든 것이 마음만 먹으면 전용대상으로 낙인찍힌다. 수해지원용으로 보낸 라면은 북한군에서 훌륭한 대체식량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따지면 교류·협력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 박 대통령은 2월 16일 국회 연설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 차원의 대북지원 22억 달러, 민간 지원까지 더하면 총 30억 달러 넘게 했는데, 북한은 핵·미사일로 대답했다고 규정했다. 2006년 3억9273만 달러까지 늘었던 민간 지원은 2013년 283만 달러로 급감했다가 지난해 844만 달러를 기록했다.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육군 장병들이 입경하는 개성공단 차량들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개성공단 임금 70% 전용 근거 불명확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2월 12일 기자회견에 이어 이틀 뒤 KBS에 나가 폭탄발언을 했다. “개성공단으로 유입된 돈의 70%가 당 서기실에 상납되고, 서기실이나 39호실로 들어간 돈은 핵이나 미사일에 쓰이는 것으로 파악된다.” 홍 장관 주장대로라면 2005년부터 북측에 지급한 총 5억4000만 달러 중 70%인 3억7800만 달러가 북측 지도부에 들어갔거나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됐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비는 약 11억∼15억 달러, 장거리 미사일 개발·발사비는 17억 달러로 정부는 추산한다.

장관의 말에는 뭔가 물증이라도 잡은 듯한 자신감이 녹아 있었다. 그러나 15일 국회에서 증거를 요구한 의원들 질타에 “증거자료, 액수 이런 걸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와전된 부분이다. 공개할 자료는 없다”고 물러섰다. ‘파악’됐다는 건 구체적 자료나 수치로 확인했다는 뜻에 가깝다. 단순히 ‘카더라’ 류의 첩보는 아니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동안 알고 있었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라는 지적에 홍 장관은 이제 파악했기 때문에 개성공단을 중단시킨 것이라는 입장을 폈다. 과연 그럴까.

개성공단 기업은 먼저 임금총액의 15%를 사회보험료로 북측 개성공단 관리기구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에 낸다. 나머지는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에 전달한다. 민경련은 사회문화시책비 명목으로 30%를 뗀다. 남은 부분이 노동자 몫인데, 교환권인 ‘물표’로 대다수를 받고 북한돈은 일부만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장관이 말한 70%는 어디부터인지가 불분명하다. 15% 사회보험료와 30%인 시책비를 더하면 기업 부담금 45%가 곧장 북한 당국에 들어간다. 결국 남은 25%어치는 물표를 지급하는 과정에 북 당국이 챙겼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참여정부 때인 2006년 11월 통일부에서 개성공단 임금 사용 경로를 설명한 적이 있다. 당시 사회보험료(총임금 15%)와 사회문화시책비(30%)를 뺀 노동자 몫(55%) 가운데 70~86% 정도가 국외 물품 구입비용(달러)으로 북측의 무역은행 개성지점에 입금된다. 즉 북한 내 물자가 부족해서 물표를 나눠주려면 달러를 주고 물품을 사야 한다. 고경빈 당시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은 임금 지급액의 70% 남짓이 “순수하게 북쪽 근로자 몫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북한은 전체주의 체제 특성상 달러·유로 등 외화를 벌면 관리부서인 노동당 39호실로 거둬들이는 체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외화벌이 일꾼들이 번 돈이 이런 식으로 모인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그동안 눈감아준 대목이다. 외화 수입을 어떤 식으로 배분하고 굴릴지 남한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순 없다. 그래서 이젠 아예 문 닫고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우리 기업이 임금을 노동자에게 직접 주는 방식을 요구했으나 외환 집중관리제에 따라 북한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1970년대 남한에서 파독 광부, 간호사나 중동 건설노동자가 벌어온 외화를 한국은행에 넣고 원화로 바꿔준 방식과 같은 원리다. 이들 노동자 출신이 당시 박정희 정부의 외환관리 정책으로 임금을 덜 받았다고 반환소송을 건다면 어떤 풍경이 벌어질까.

적어도 형식상 북측이 임금 직불제를 꺼리는 이유는 환율문제에 있다. 공식 환율과 시장의 실제 환율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남측 기업이 공식 환율로 임금을 주면 노동자가 받을 북한 원화는 이론적으로 일반 노동자 수준의 10배다.

다만 북한 당국이 달러로 물품을 싸게 수입해 와서 물표와 바꿔준다면 상당한 차익을 거둘 여지는 있다. 노동자 몫 중 물표를 통해 몇 %를 북측 당국이 챙겼는지 추산키는 어렵다. 통일부가 임금의 70%가 빼돌려졌다고 본 근거는 뭘까. 통일부 당국자는 “홍 장관을 비롯한 윗선에서 관련 자료를 봤을 수 있지만 우리는 가진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추정컨대 정보기관에서 휴민트를 통해 임금의 70%가 전용된 통계를 확인했거나, 북측 정보를 빼냈다면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대변인은 확인 요청에 “우리가 드릴 말씀은 없다. 국회 정보위에도 근거자료를 제출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경공업성 책임지도원을 지낸 탈북자 김태산씨(64)는 2월 15일 국회 세미나 자료를 통해 “기업들은 북한의 노동자에게 80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북한 정부는 달러를 모두 회수하고 노동자 1인당 북한 돈으로 6000원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성공단 쪽에서 근무한 군 출신 탈북자는 “김씨도 39호실이 아니라 경공업성 출신이어서 정확한 정보를 말한 게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 중에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사람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혀 경험을 청취하기도 어렵다.

참여정부 총리를 지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호주 교포인 송모 사장의 경험을 들어 임금의 대다수는 북측 노동자 생필품을 사는 데 물표로 쓰인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개성공단에 총 5억4000만 달러가 들어갔는데, 참여정부 때 2000만 달러가 들어갔다. 나머지 5억2000만 달러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갔는데, 핵개발 자금으로 제공했느냐”고 따졌다.

천안함 피격 때 어뢰추진체처럼 이번에도 입증 책임은 오로지 정부 몫이 됐다. 강영식 총장은 “예컨대 남한이 무역 이익을 전용해 사드 배치에 쓴다고 중국이 비판하며 경제보복을 해온다면 우리가 뭐라고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대통령 통치행위 위법 논란
이번 개성공단 전면 중단조치의 적법성을 놓고도 논란이 불거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11일 청와대와 통일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며 개성공단 전면 중단조치가 헌법상 ‘대통령 긴급 재정경제명령’인지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한 통일부 장관의 ‘협력사업 정지조치’인지 물었다. 헌법 제76조 제1항은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만 대통령이 긴급 명령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국회는 개회 중이었다. 또 남북교류협력법 제17조 제4항에는 국가 안보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어야 하고, 6개월 내의 정지기간을 정하고 청문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요건과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반면 정부는 5·24조치와 비슷한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이유로 적법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2월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따른 결정”이라고 답했다. 5·24조치에 의한 피해를 주장한 ㈜겨레사랑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으나 대법원은 2015년 6월 ‘국가 안보를 위해 행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행정적 행위’라며 국가 책임이 없다고 결정했다. 막강한 대통령제 하에서 통치행위는 ‘요술 방망이’가 됐다. 민변 송기호 변호사는 “법적 근거가 없는 대통령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는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어쨌거나 이번 조치로 남북 모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절대 액수에서는 투자 규모라든지, 이익을 더 많이 본 남한 기업들의 피해가 크다. 다만 상대적인 충격은 경제규모가 작은 북한 노동자나 당국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공단이 본격 가동된 2005년 10억5600만 달러이던 남북 교역액은 지난해 27억1349억 달러로 2.5배 늘었다. 남북 교역액 중 약 80%는 남한 기업이 챙기고 나머지는 북측이 임금 형태로 가져가는 구조다. 남한은 무역규모가 1조981억 달러이니 개성공단 생산액은 0.04% 수준이다. 북한의 무역규모는 2014년 81억7400만 달러다. 개성공단의 연간 생산액이 약 5억 달러여서 북한 무역규모의 6% 정도 된다. 북측 인건비가 2014년 8840만 달러로 무역액의 1% 수준이다.

북한은 중국과 2014년 63억6400만 달러를 교역해 전체의 약 78%를 차지할 만큼 의존도가 높다. 북한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대부분은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다. 북한은 중국에서 2014년 388만5000배럴의 원유를 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을 무너뜨리겠다면 원유 공급만 끊으면 되겠지만 충격을 감당할 중국이 응할 리 없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중국 덕분에 이번 조치로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외화가 부족한 북한에 1억 달러도 큰 액수여서 타격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은 “앞으로 핵문제가 진전이 없으면 이전 형태의 경협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조치는 적어도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 이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태우 정부 이래 화해·협력, 민족연합 단계 등을 거친 공동체 통일방안을 표방한 대북 포용정책은 모두 부정하고, 북한 붕괴·흡수전략밖에 없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도 특수성을 인정받으며 명맥을 유지해온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은 국제사회에서 쓸 카드를 하나 잃게 됐다. 그 대가는 남북 당국자가 아니라 국민들이 방위비 부담을 비롯해 어떤 형태로든 치르게 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과 대화하려면 미국의 지지가, 압박하려면 중국의 지지가 필요한 게 한반도 국제질서”라며 “북한을 압박하려면 중국과 사전조율이 절실한데도 사드 문제로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재, 압박 일변도로 갈 경우 치를 대가는 과거 대화·협력의 부작용보다 훨신 클 수도 있다. 정부 계산법에는 퍼주기만 있지, 경협·대화에 위기관리 비용이 들어 있다는 건 간과한 격이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