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개성공단에 대한 ‘국가의 배신’

정부 믿고 입주한 기업들 재기 의문… “2013년도 입으로만 보상, 한 푼도 못 받았다”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 아닌가? 가만히 있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네.”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ㄱ씨는 씁쓸하게 말했다. ㄱ씨는 요즘 개성공단 사태를 처리하는 정부의 태도가 세월호 참사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엊그제는 몇몇 보수언론에서 정기섭 개성공단 입주기업협의회 회장의 열린우리당 전력을 물고 늘어졌다. 정 회장은 개성공단 폐쇄가 결정되자 입주기업의 피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뒤이어 정 회장에 대한 보수언론의 신상털이식 공격이 시작됐다. ㄱ씨는 “정 회장의 말이 불편한 쪽에서 정 회장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보수언론에서 정기섭 회장이 야당과 짜고 정부를 비판한다고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 회장의 생각이 일반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맞지 않고 다른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정 회장과 생각이 다를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협회 내부마저 갈라치기하려 하고 있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여론을 악화시켜 세월호 유가족들을 파고들었듯이, 개성공단 입주기업에도 그렇게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ㄱ씨 주변에는 정부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는 대표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었다.

복구되지 않은 2년 전 피해보다 더 심각
ㄱ씨의 울분은 깊다. 30년간 죽기살기로 일해왔지만, 결국 한국 사회에서 중소기업은 현대판 노예가 아니었느냐는 쓰라린 결론만 남는다. 그나마 개성공단을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마저도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결정으로 중단되니 유지하던 사업을 접어야 하나 하는 우려가 남는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했던 사업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전생에 큰 업보를 갖고 태어난 것 같다. IMF 외환위기도 넘기고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중소기업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버텨 왔다. 독일, 스코틀랜드, 일본에서 사업하는 친구들을 보면 중소기업을 하더라도 늘 행복하고 활기가 넘치는데, 나는 제대로 잠 한숨 못 자고 30년을 보냈다. 그렇게 30년을 보냈는데도 결과가 지금 이렇게 되니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은 현대판 노예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16일 서울 여의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서 관계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앞으로 닥쳐올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2013년에 개성공단이 5개월 가동 중단됐을 때도 그랬다. 지금은 상황 때문에 잠잠하더라도 2~3개월이 지나면 각종 거래처에서 내용증명 문서들을 보내올 것이다. ‘을’ 입장에서 100% 변제를 해줄 수밖에 없다. 지불이 늦었다고 더 높은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2년 전 피해가 아직 복구되지도 않았는데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 ㄱ씨는 직원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들에 대한 책임이 가장 고통스럽다. “직원들이 10명 정도 있는데, 공장 문을 닫으니 사실 이들이 할 일이 없다. 이 사람들이 대부분 40~50대 가장인데, 지금 어디에 가서 재취업을 할 수 있겠나. 일용직이나 경비업무 정도일 텐데, 그게 제일 걱정이다.” 신한용 신한물산 대표는 “개성공단 관리직원이 보통 10명~15명 정도 되는데, 다 합치면 이게 3000명 정도 된다. 여기에 협력업체라고 하면 그들 가정의 파급이 상당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가장 바라는 건 개성공단의 재가동이다. 하지만 그 희망은 버렸다. ㄱ씨는 8년째 사업이 중단된 금강산 관광사업처럼 개성공단도 장기 중단에 돌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단이 되더라도 적절한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 중단의 경우에 비추어 봤을 때 정부가 적절한 보상을 해줄지는 의문이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이 발생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이후 8년간 금강산 관광은 문을 닫은 상태다. 애초에 금강산기업인협의희에는 49개의 사업장이 소속돼 있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협회에 남아 있는 기업은 21개에 불과하다. 대개가 도산해 연락이 끊겼고, 연락이 이어지더라도 경제적 형편상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종흥 금강산기업인협의회 회장의 말이다. “개성공단은 경협보험이라도 있지 금강산은 보험도 없다. 시설투자를 포함해서 손실액은 98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지원은 연 2% 저리로 대출 받은 게 전부다. 처음에 문을 닫을 때만 해도 이렇게 장기 중단으로 이어질 줄 몰랐다. 개성공단이 문 닫기 전까지도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개성공단마저 문을 닫았으니 남북경협은 끝났다고 본다.”

5개월 만에 재가동, 받았던 보험금 반납
개성공단에 입주를 준비하다 ‘5·24조치’로 사업이 막힌 정범진 겨레사랑 대표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정 대표는 남북경협만 2~3년을 준비한 후 2010년 개성공단 입주를 준비 중에 있었다. 개성공단에 상업시설이 없다 보니 사무실 휴게공간 등을 짓는 상업용지를 분양받아서 건축설계가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5·24조치가 시행되면서 기존의 사업 외에 추가적인 투자와 사업은 금지됐다. 정범진 대표는 “빼도 박도 못하고 돈이 그대로 묶여버렸다. 그런데 정부가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당시에 나말고도 그런 분들이 꽤 있었다. 개성공단 외에 내륙 쪽으로 더 들어가 사업을 하시려던 분들이 있다. 초기에는 남북관계가 빨리 좋아져서 재가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개성공단 폐쇄를 보니 이제 아주 막판으로 간 것 같다.” 정 대표는 정부의 조치로 재산권과 영업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까지 간 소송은 결국 패소했다. 정부의 5·24조치는 정당했다는 논리였다.

2013년 5개월 동안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됐을 때도 보상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해 4월 9일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고, 남한은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며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5개월간 개성공단은 가동이 중단됐다. ㄱ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입주기업 피해를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충분히 보상해주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 관계부처에서도 수많은 보상책을 내놨다. 수천억원의 보상책 내놨는데, 실제로 입주기업은 한 푼도 못 받았다.” 입으로는 충분한 보상을 말했지만 정부의 행동은 달랐다. 5개월 만에 가동이 재개되면서 기업들은 받았던 경협 보험금을 다시 반납해야 했다. 많은 업체들이 보험금 반납에 어려움을 겪었다. 신한용 신한물산 대표의 말이다. “2013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때 받은 보험금을 5개월 후에 다시 반납해야 했다. 처음 보험금을 줄 때 보험금을 개인에게 직접 주는 게 아니다. 은행을 통해서 돈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채무부터 변제된다. 자기 돈 100%로 사업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이 돈 빌리고 저 돈 빌렸을 텐데, 보험금이 들어오면서 그 빚을 먼저 갚게 되고 남은 돈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5개월 후 공단 재가동하려니 이걸 다시 내놓으라고 하는데, 줄 돈이 있나. 대출을 다시 받아야 하는데, 대출도 개성공단 분위기 좋을 때나 해주지 대출 받기도 힘들었다. 그때 받았던 보험금을 이제껏 상환하지 못한 업체가 7개 정도 된다. 이들은 정상적 경영활동이 힘들다.”

2013년 개성공단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보상이 아니라 대출해주겠다는 말”
당시 입주기업들은 보험금의 반납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관할 부처에서는 기업들의 어려움을 감안해 반납 시기를 연장하려는 논의가 있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당시 기획재정부의 내부문건을 분석했다. 문건의 내용이다. “당초 BH(청와대)에서는 우리 부(기획재정부)와 관계부처 협의를 토대로 경협보험금 회수기간 연장 요구에 대해 ‘한계가 있다’는 보고를 올렸으나, VIP(박 대통령)께서 ‘불가함’으로 직접 정정했다.” 관계부처에서는 협의가 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입으로는 충분한 보상을 말했지만 관계부처에서 올린 ‘반납 기한 연장’ 요청도 승인해주지 않았다.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2월 16일 박근혜 대통령 국회 연설이다. “정부는 입주기업들의 투자를 보전하고, 빠른 시일 내에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갈 것입니다. 남북경협기금의 보험을 활용해 개성공단에 투자한 금액의 90%까지 신속하게 지급할 것입니다. 대체부지와 같은 공장 입지를 지원하고, 필요한 자금과 인력 확보 등에 대해서도 경제계와 함께 지원할 것입니다. 또한 생산 차질 등으로 인한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ㄱ씨는 “실효성 없는 대책이다. 보험 가입업체에 대한 이야기만 있고 미가입업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사실 가입업체가 받는 보험금도 미미한 액수다. 보상이 아니고 지원이지 않나. 한마디로 대출해주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ㄱ씨는 경협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보상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한용 신한물산 대표의 말이다. “대체부지, 대출. 필요한 사람에게 이런 지원은 좋을 수 있다. 그런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보상은 안 된다. 보상해 주고 싶어도 현행법이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법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보상을 해줄 수가 없다고 한다. 실질적 보상을 위해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특별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실질적 보상이 안 되고 특별법도 제정되지 않고 이대로 끝나는 거 아닌가 하는 게 가장 큰 우려다.”

국회에는 남북경협 피해기업 보상법안이 제출돼 있지만 관련 법안들은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다. 정기범 대표는 지난 2월 3일 국회가 고의로 입법을 하지 않고 있다는 입법부작위 헌법소원을 제출한 상황이다. 정 대표는 “지금 개성공단을 보면 지난 5·24조치 때와 정부의 태도는 똑같은 것 같다. 강하게 싸우지 않으면 손실은 전혀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