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격전지 대전 중구] 터줏대감 떠난 자리 ‘신진 각축전’

새누리 강창희 의원 6선 끝으로 불출마… ‘맞장’ 권선택씨는 대전시장으로

터줏대감들이 떠난 무주공산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다. 대전 중구 선거구는 현역 의원인 새누리당 강창희 의원이 6선을 끝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곳이다. 강 의원과 17·18·19대 총선에서 맞붙었던 권선택 대전시장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에 당선돼 여야의 비중 있는 정치인들이 떠난 자리에서 각당 예비후보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충청권은 비교적 보수적인 면이 강하면서도 선거에서는 전통적으로 ‘캐스팅보트’ 성향의 투표행태를 보여온 곳이다. 충청권의 대표적 격전지인 대전 중구의 역대 선거 결과도 이 지역 유권자들의 성향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최근 세 번의 총선에서 대전 중구 지역구 당선자의 당적은 17대 열린우리당, 18대 자유선진당, 19대 새누리당으로 계속 바뀌어 왔다. 지역 기반의 중도보수 야당에 대한 지지세가 작용해 새누리당도 독보적 우세를 보이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야권의 분열로 중도노선을 표방하는 국민의당이 나온 20대 총선에서는 결과를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대전 중구 원도심의 번화가인 으능정이거리. / 김태훈 기자

최근 세 번의 총선에서 엎치락뒤치락
대전의 구도심을 끼고 있는 중구 지역은 다른 구에 비해 비교적 주민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충남대와 카이스트가 자리잡고 있어 20~30대 유권자의 비중이 높은 유성구나 대전정부청사와 시청을 비롯한 공공기관이 몰려 있는 서구와 비교하면 보수적 투표성향도 강하다. 하지만 중년층 이상의 유권자들도 새누리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 점이 특색이다. 충청도 사람들이 느긋하면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외부의 시각이 전부 들어맞지는 않았다. 특정 후보에 대한 확실한 투표 의사는 선거 직전까지 고민해 보겠다는 유권자들이 많았으나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대한 결정은 이미 내려뒀다는 유권자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대흥동에서 만난 자영업자 이승창씨(48)는 자신의 집안이 외지 출신 인구 비율이 높은 대전에서는 드문 편인 토박이 집안이라고 말했다. “설 명절에 보니 집안 어르신들은 옛날 자민련이나 자유선진당 사람들이 새누리당 쪽으로 많이들 갔으니 거길 찍겠다고 하시고, 저희 동기들은 안철수 (국민의)당도 괜찮다고 보고 있어서 서로 갈린 분위기예요.” 이씨는 자신 역시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보수에 가깝다고 하면서도 새누리당에는 선뜻 표가 안 간다고 말했다.

이씨가 새누리당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처럼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등 야당에 거부감을 표현하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다. 유천시장에서 만난 주부 남기옥씨(64)는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나, 특히 국민의당은 새로 뭘 하겠다고 나와놓고는 예전의 호남 사람들만 모이는 걸 보니 별로 믿음이 안 간다”고 말했다. 상인 여모씨(67)도 “야당은 별 쓸데 없는 트집만 잡는 것처럼 보여서 차라리 여당이 낫다”고 말을 거들었다.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유명 정치인들이 출마하지 않는 까닭에 여야를 막론하고 예비후보들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새누리당에서는 곽영교 전 대전시의회 의장, 김세환 전 대전시티즌 사장, 신진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은권 당협위원장, 강영환 전 총리실 공보협력비서관, 이에리사 비례대표 의원이 나선다. 국민의당에서는 고무열 한국청년유권자연맹 대전지부 운영위원장, 유배근 전 민주당 대전 중구 지역위원장, 송미림 사단법인 아름다운숲 이사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유일하게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이모씨가 선관위에 제출한 범죄기록을 위조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예비후보를 사퇴하고 탈당함에 따라 더민주 소속 예비후보 자리는 비어 있는 상태다.

이들 예비후보 가운데서는 현역 비례대표 의원이면서 과거 탁구선수 경력으로 유명한 이에리사 의원과 이은권 새누리당 대전 중구 당협위원장이 새누리당 내부 경선 통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국민의당에서는 지역에서 활동해온 입지를 바탕으로 유배근 예비후보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더민주 대전시당은 현재 비어 있는 지역구를 메울 경쟁력 있는 예비후보를 유성구 등 인근 지역구에서 끌어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리사 의원 제외하면 인지도 낮은 편
하지만 이들 예비후보들조차도 접촉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직장인과 학생층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선거국면이 다가올수록 상대적 무관심층과 부동층 유권자의 표의 향배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어 각 예비후보 캠프마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전 원도심의 중심가인 으능정이거리에서 만난 직장인 김선국씨(42)는 “그나마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이에리사와 유배근인데, 성향이 가까운 걸로 따지면 유배근을 찍어야겠지만 확실한 결정은 더 두고 보고 내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양지희씨(23)도 “투표는 기권하지 않고 꼭 하겠지만 아직 어떤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세우는지는 자세하게 모르고 있어서 결국엔 당을 보고 투표할 것도 같다”고 말했다.

야권에 비해 든든한 고정 지지층이 있는 여당 예비후보들로서는 지역 표심을 다지기 위해 원도심 지역의 공동화 현상 등으로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가는 중구의 개발 공약을 저마다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이에리사 의원은 “상가 매출 감소 등 주민 불편과 원도심 비활성화를 가져오는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는 전면 재검토하는 대신 현행 중교로 차 없는 거리를 확대해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를 테마에 맞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방안을 내세웠다. 이에 맞서 이은권 예비후보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빠르게 접근할 수 있게 원활한 교통망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며 충청권 광역철도 1단계 건설과 중구 내에 자리잡고 있는 서대전역으로의 호남선 KTX 경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의 예비후보들도 원도심 공동화 현상에 대해서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대책을 제시하는 한편, 정권 심판론과 같은 이슈로 야권 지지표의 결집을 노리며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국민의당 유배근 예비후보는 “지역발전을 가로막아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이 희망을 잃어가고 행정과 상업, 교통의 중심지였던 중구가 공동화·슬럼화되는 문제를 우선 해결하겠다”며 “대기업과 수도권 위주의 정책을 편 박근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무열 예비후보도 “양당구조의 기득권을 심판해서 새로운 정치의 틀을 짜야 한다”며 “대전천, 유등천 등 천변 도로를 재정비하고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