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계열사를 매각하는 이유

지주회사 개편이 주된 배경… 공정거래법에 저촉되는 순환출자 구조의 해결책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물산 건설부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지난해부터 언론과 증권가 정보지 등에서 매각과 합병 등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된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이들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삼성은 다른 회사를 샀으면 샀지, 파는 기업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이 방위산업부문 계열사인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한화에, 석유화학부문 계열사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을 롯데에 각각 매각한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재계에서는 “마누라와 자식 빼곤 모두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 중에는 삼성중공업이나 삼성엔지니어링처럼 업계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회사도 있지만, 상당수는 ‘견실한’ 기업들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 해외 매각설이 제기된 제일기획만 해도 삼성그룹의 광고를 전담 집행하는 세계 15위 규모의 글로벌 광고회사다. 지난해에도 2조8067억원의 매출과 127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물산은 2014년부터 건설업체 시공능력평가 순위 1위를 기록 중이고, 삼성카드는 신용카드 업계 2위, 삼성증권은 업계 3위 기업이다. 지난해 매각된 방산, 화학부문 계열사들 역시 실적과 전망이 나쁘지 않았다.

삼성이 계열사를 잇달아 매각하는 주된 배경으로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 꼽힌다. 우선 공정거래법 등에 저촉되는 계열사 간 순환출자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 이후 이재용 부회장 등 3남매로 그룹의 소유권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계열사 분리나 지분 분할 등 여러 변수가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그룹의 소유·지배구조를 미리 정리해 둘 필요성도 제기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발간한 ‘삼성그룹의 금융지주회사 설립: 분석과 전망’ 보고서에서 “현재 삼성그룹의 소유지배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라고 단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가운데), 어머니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2015년 8월 1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큰아버지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 <서울경제> 제공

“마누라·자식 빼곤 모두 구조조정 대상”
또 다른 배경으로 제기되는 게 이 부회장의 ‘개인적인 의지’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외 다른 사업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그룹의 계열사 정리작업을 빗댄 풍문일 수 있지만, 삼성 내부에서도 이 같은 말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지배구조 재편작업은 올해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는 특히 삼성전자와 함께 지배구조 개편의 한 축이 될 금융지주회사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삼성생명은 삼성전자가 소유한 삼성카드 지분 전량(37.45%)을 사들였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졌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라는 점에서도 금융지주사 설립문제는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가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삼성전자 지분을 일정 부분 정리해야 한다. 이 작업에 따라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가 바뀌거나, 계열사끼리 분할이나 합병을 반복할 수도 있다.

금융지주회사 설립 시나리오를 놓고도 다양한 관측과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보고서에서 “삼성그룹의 소유구조상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나는 삼성물산을 인적분할해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한 투자부문을 금융지주회사로 만드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삼성생명을 인적분할해 삼성화재·삼성증권·삼성카드 등 기타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한 투자부문을 금융지주회사로 만드는 방법이다.

삼성물산을 인적분할하는 방법은 우선 삼성물산을 사업회사(물산사업회사)와 삼성생명 주식만을 보유한 회사(물산금융지주)로 나눈다. 이후 물산금융지주에서 각종 요건을 충족한 뒤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법이 거론된다. 현재 이 부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물산 지분은 40.26%다. 물산을 분할하면 이 부회장 등은 물산사업회사와 물산금융지주에서 각각 40% 이상씩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물산금융지주는 삼성생명 주식 19.34%를 보유하게 된다. 금융지주회사법에서는 금융지주회사는 상장자회사의 경우 3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상장회사이므로 물산금융지주는 추가로 삼성생명 지분 10.66%를 더 확보해야 법률적 요건을 충족한다. 추가 확보해야 하는 지분은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0.76%를 활용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하고 있다.

이때 문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의 지분이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의 주식 14.98%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법에서는 자회사인 보험회사가 또 다른 보험회사를 손자회사로 둘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삼성화재 주식을 전량 매각하거나 물산금융지주가 삼성화재 지분 30%를 확보해 아예 삼성생명과 동등한 자회사로 편입해야 한다. 물산금융지주가 삼성화재 지분 30%를 확보하려면 4조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한데, 이 돈을 어디서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다.

구조상으로는 삼성생명을 분할해 자체적으로 금융지주를 만드는 게 더 간단하다. 삼성생명을 자사주 및 금융계열사를 거느리는 생명금융지주와 생명보험업을 하는 사업자회사로 분할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생명금융지주가 보유한 삼성생명 자사주 지분은 10.21%가 된다. 역시 30% 이상 지분을 확보해야 금융지주회사 설립이 가능하므로 부족한 부분(19.71%)은 다시 공개매수 등으로 추가 확보해야 한다. 이때는 삼성물산이 ‘지원군’ 역할을 할 수 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19.34%)을 공개매수로 넘길 경우 필요한 30%를 거의 채울 수 있다. 보고서는 “이 경우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20.75%)을 다른 목적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지주회사 설립 시나리오 분분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화재 등 다른 금융계열사들은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지분 추가 매입 등으로 2조~3조원가량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지주회사 설립과정에서 삼성전자 지분구조 변경은 불가피하다. 물산금융지주 방법이든 생명금융지주 방법이든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처분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54%를 가진 최대 주주다. 금융지주회사 설립 시 삼성생명은 2대주주 수준까지 삼성전자 지분을 줄여야 한다. 현재 삼성물산이 전자의 지분 4.06%를 보유한 2대주주이므로 삼성생명은 이보다 낮게 삼성전자 지분을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은 3.48%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지분을 외부에 매각하는 건 이 부회장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배력 약화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탓이다. 되도록 그룹 내에서 물량을 사야 하는데, 재원 마련이 문제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감안할 때 3.48%의 지분을 매입하려면 6조원가량의 자금이 필요하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최대한 매입해 삼성생명이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은 단지 오너 일가나 개별 기업 문제만이 아니다. 수많은 주주들과 삼성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관련된 거대한 이슈다. 이미 최근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SDS의 사례 등에서 이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욱 비일비재할 가능성이 높다. 고용 및 노동 문제도 얽혀 있다. 방산부문 계열사의 한화 매각과정에서는 해당 계열사 소속 삼성 직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이 때문에 삼성의 지배구조 재편작업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금융지주회사 설립의 경우 정부의 사전 승인이 필수적이다. 정부 승인과정에서는 절차나 목적 등에 하자가 있는지 여부보다는 삼성의 지배구조 재편작업에 대해 여론이 공감하고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삼성이 어떤 방법과 절차를 통해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여론의 지지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당시 국민연금이 찬성하지 않았다면 합병은 불가능했다. 국민연금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송진식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