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저성과자’는 누구의 기준인가?

‘저성과자’란 내가 일을 못 하느냐, 잘 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누군가의 주관적 판단이나 어떤 악의의 결과일 수도 있으며, 내 존엄이 그들이 매기는 점수에 볼모로 잡혀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보았다. 서부 개척시대 이전인 19세기 미국의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들과 함께 원정대에 참여했다가 곰의 습격을 당해 사지가 찢기는 큰 부상을 당한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그의 눈앞에서 동료에 의해 사랑하는 아들 또한 살해를 당하고 결국 그는 복수를 위해 부상한 몸으로 아들을 죽인 동료를 쫓기 시작한다. 영화는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휴 글래스의 처절한 생존 투쟁 및 복수 여정을 함께 겪게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휴 글래스는 실존 인물이었다고 한다.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 영화 속 풍경과 같다고 생각했다. 감히 맞설 수 없는 거대한 자연, 죽음의 위기에 처한 그를 버린 것도 모자라 아들까지 살해한 동료가 있는 그 비정한 세상의 풍경과 뭐가 다를까. 낙오되지 않으려 열심히 살아도 곰에게 뜯기거나,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흐름에 종잇장처럼 휩쓸려버리거나, 죽기 싫으면 인디언이든 동료든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그런 세상 말이다. 사실, 영화의 배경이 된 그 시대도 인디언의 땅을 폭력과 자본으로 강탈한 시대 아니던가.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 규칙 변경안, 이른바 ‘양대 지침’을 발표했다. ‘일못’이라는 이유로 쉽게 탈락시킬 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물론 “일을 못 하면 동료뿐 아니라 회사에도 손해를 끼치니 당연한 것 아닌가?”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저성과자’는 누구의 기준인가? 이런 경우가 있다. 후배 A는 임신한 몸으로 회사의 요청 때문에 연일 야근을 하며 버티다가 결국 건강이 안 좋아져 예정보다 빨리 출산휴가를 써야 했다. 회사는 그런 그녀에게 낮은 인사고과 점수를 줬다. ‘저성과자’로 분류될 수 있는 점수였다. 아이를 낳고 양육한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는 한 장의 사진이 공유되었다. 그 사진 속 내용은 이랬다. “고객님, 한 달 60대를 고쳐야 저성과자 되지 않습니다. 고장 좀 내주세요. 제발요. 그래야 서비스 기사가 해고당하지 않습니다.” 절박한 사정에 ‘우리 집 티브이를 고장 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저성과자’란 내가 일을 못 하느냐, 잘 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누군가의 주관적 판단이나 어떤 악의의 결과일 수도 있으며, 내 존엄이 그들이 매기는 점수에 볼모로 잡혀 있다는 뜻이다. 19세기 인물 휴 글래스나 2016년을 사는 우리나 인생 목표는 같다. 생존해야 한다는 것.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레버넌트, 즉 ‘취업 경쟁에서 살아온 자’가 되거나 ‘해고되지 않은 자’가 되어야 겨우 생존할 수 있다.

휴 글래스는 사실, 죽은 인물이다. 그의 아들을 살해한 자도, 원정대 동료들도 그를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를 죽음에서 구원한 것은 인디언의 도움이다. 죽었으되 살아야 할 그를 위해 인디언은 기꺼이 먹을 것을 나눠주었으며, 그를 보호하기 위해 나뭇가지 집을 만들어 준다. 심지어 인디언이 타던 말도 휴 글래스가 죽음에서 돌아오도록 돕는다. 결국 사람, 그리고 함께 나누는 체온이 서로를 살게 하는 것이다. 살게 하는 것뿐 아니라 비정한 세상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휴 글래스처럼 죽음 곁에서 삶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취업’이라는 협곡을 넘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거나 ‘저성과자’라는 낙인을 받지 않기 위해 회사라는 막막한 자연 앞에 맨몸으로 납작 엎드려야 한다. 느닷없이 달려드는 곰이나 배신하는 동료도 늘 곁에 있다. 칼바람 부는 설원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갈망하는 것일까.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나뭇가지) 무덤에서 기어 나오는 휴 글래스의 모습은 ‘다시 태어남’에 가까웠다. 죽음이 그를 살린 것이다.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버둥대는 것을 넘어서서 죽어야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체온을 나누어줄 인디언이 있다면,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움막 속에서 다시 태어나듯 세상을 향해 ‘역습’할 수 있을 것이다.

<오수경 일 못하는 사람들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