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풍성한 SOC 사업발표 왜?

제주 제2공항, 서울~세종 고속도로 등 초대형 사업 잇달아 발표…

4월 총선 의식한 듯

결국은 사회간접자본(SOC)이었다. 2015년 11월과 12월, 두 달 동안 제주 제2공항, 서울~세종 고속도로, 월곶~판교 복선전철 등 수조원대 초대형 SOC건설사업이 잇달아 발표됐다. 부산항 자성대부두 개발, 경기 화성 송산국제테마파크 등 대규모 지역개발사업도 공개됐다. 발표는 했지만 당장 2016년에 삽을 뜨는 사업은 없다. 또 2016년에 쓸 SOC예산 3조5000억원을 연말에 미리 배정하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되면 2016년에 할 SOC사업을 연초부터 곧장 시작할 수 있다.

SOC 판 벌이기와 예산 끌어쓰기. 전형적인 경기부양책이지만 2016년은 유독 상반기에 집중되고 있다. 4월에 있는 총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 SOC사업을 줄여 SOC 낭비를 막고 재정 안정화를 이루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공염불이 되고 있다.

한 해 마무리를 사흘 앞둔 2015년 12월 29일. 기획재정부와 해양수산부는 대규모 SOC 관련 보도자료를 냈다. 기재부는 “새로운 민자사업 방식으로 6조원 규모의 3개 대형민자사업에 대한 추진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논의된 사업들은 서울~세종 고속도로 중 안성~세종구간(2조3000억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구간(일산~삼성역, 3조2000억원), 서울 경전철 위례선 사업(2000억원) 등이었다. BTO-rs, BTO-a 등 새로운 민자사업 방식을 도입해 이들 사업을 조기에 착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업의 착공은 2016년이 아니다. GTX-A와 서울 경전철 위례선은 2019년, 서울~세종 고속도로는 2020년 착공 예정이다. 이제야 민자 적격성 심사를 하는 단계다.

제주 서귀포 시민이 지난 11월 11일 서귀포시 청사 앞에 걸린 제2공항 건설계획을 환영하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미확정·장기계획 사업에 울궈먹기까지
같은 날 해양수산부도 “자성대부두를 컴팩트 복합도심으로 재개발하는 ‘부산항시티’로 재창조하겠다”며 “내년부터 세부적인 추진계획을 마련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자성대부두 재개발사업은 노후 주택가 37만㎡까지 상업·업무·관광·주거시설로 재개발하겠다는 것으로, 총 사업비만 11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연간 33조4580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만6100명의 고용유발효과가 기대된다고 해수부는 설명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내년 3월에야 사업 타당성 용역이 시작되고, 착공은 2019년 7월이다. 개발계획만 불쑥 발표한 셈이다. 구도심의 지도를 바꾸는 대형사업이지만 장·차관급의 별도 기자회견도 없었다.

연말 SOC 선물 파티의 신호탄은 제주 제2공항 발표였다. 지난 11월 10일 국토교통부는 ‘제주 제2공항’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에 2025년까지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사전 타당성 조사 결과 성산읍 일대를 적기로 보고 이곳에 건립을 한다고 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공사비는 약 4조1000억원. 제주도는 2016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한 뒤 공항 건설 기본계획, 실시계획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정부가 당초 발표한 2025년보다 2년을 앞당긴 2023년에 공항을 개항할 것”이라고도 했다. 제주 제2공항 발표는 제주도민들에게도 파격적인 소식이었다. 부산과 대구가 싸우는 남부권 신공항 건설 문제 때문에 정부는 제주 제2공항 건설에 그다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었다.

최계운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이 지난 12월 22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기자실에서 경기 화성시 송산그린시티의 국제테마파크에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을 개장하기 위한 복합개발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9일 뒤인 11월 19일. 총연장 연장 129㎞의 서울~세종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됐다. 완전 개통 예정은 2025년. 한동안 보지 못한 대형 고속도로 건설사업이었다. 고속도로 기본계획이 나온 지 6년 만의 ‘깜짝’ 발표였다. 지나가는 지자체만 경기 하남, 용인, 안성 등 6개시와 충남 천안, 세종 등 8개에 달한다. 경기·충청권 표심잡기용 정책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업비만 총 6조7000억원이 든다. 때문에 ‘4대강 이후 최대 SOC 사업’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정부는 막대한 건설비용 때문에 서울~세종 고속도로 건설 발표를 미뤄 왔다. 공공기관 부채 감축을 추진 중인 시점에 도로공사에 전 구간을 맡길 수 없었고, 민자사업자는 수익률을 높여주지 않으면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버텨 왔다. 예상치 않았던 발표에 충북은 당황했다. 충북은 중부고속도로 확장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월 1일에는 철도건설사업이 발표됐다. 총연장 39.4㎞의 월곶~판교 복선전철은 사업비 총 2조1122억원이 투입된다. 경기 시흥시 월곶에서 광명, 안양을 거쳐 성남시 판교로 이어진다. 20.9㎞의 여주~원주 단선전철은 사업비 총 5001억원이 투입된다. 경기 여주시와 강원 원주시를 잇는다. 두 노선이 연결되면 월곶~판교~여주~원주~강릉을 잇는 철도망이 완성된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하지만 언제 개통된다는 확약은 없었다. 명확한 추진 일정도 없이 청사진부터 제시한 꼴이 됐다.

정부, 재정 안정화 약속은 공염불
2일 뒤인 12월 3일에 들린 또 다른 공항 건설 소식은 ‘울궈먹기’였다. 국토교통부는 울릉도에는 2021년,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는 2020년까지 공항을 개항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업은 2013년에 이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던 사업이다. 울릉공항은 2015년 11월 공항 개발계획이 고시됐고, 흑산공항은 기본계획을 2015년 말까지 고시하기로 했던 사업이다. 두 사업 다 2016년까지는 공사 입찰공고가 나간다.

12월 22일에도 미완의 새로운 개발사업이 공개됐다. 한국수자원공사는 “경기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국제테마파크 복합개발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USK)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컨소시엄에는 중국건축고분유한공사, 홍콩중국여행유한공사 등 중국자본과 대우건설 등이 참여한다. 2007년 사업이 진행됐다가 좌초된 지 8년 만에 사업 재개 선언이었다. 송산 국제테마파크 프로젝트는 화성시 신외동 일대 420만㎡ 부지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한류테마센터, 워터파크, 콘도미니엄, 골프장 등을 짓는 계획이다. 예상사업비만 5조원이 넘는다.

문제는 재원조달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컨소시움의 자본금은 8500억원이다. 4조원 이상을 은행권에서 차입해 와야 한다는 얘기다. 수자원공사는 하나은행과 국책은행 등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조달한다는 계획이지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PF의 매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인 데다 수자원공사 자체 투자여력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분양해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2차 사업계획도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과거 사업이 8년이나 지연됐던 것도 이런 난제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복합리조트 개발사업인 영종도 에잇시티 사업은 자금조달에 실패해 2013년 사업이 무산됐다.

주요 SOC가 잇달아 발표되는 것은 행정부, 국회,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뭔가 성과를 냈다는 표시를 해야 하는데, SOC사업만큼 명확하게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게 없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서울~세종 고속도로 발표의 경우 여야 의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4년과 달리 2015년 유독 굵직한 SOC 발표가 많은 것은 2016년 총선을 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단순한 의정보고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내년 SOC예산을 조기편성하고, 공공기관을 독려해 6조원의 투자를 집행하는 등 상반기 경기부양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통상 연말에는 해오던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1년 내내 준비해 오던 주요 발표들이 몰릴 때가 있다”며 “총선과의 연관성은 ‘오비이락’격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