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히말라야>-과신에 따른 비합리적 결정 ‘집단사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한 엄홍길 대장은 도봉산 망월사에 들를 때마다 예불을 올린다. 등반 중에 운명을 달리한 대원들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그 중에는 엄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 4좌를 함께 오랐던 박무택 대원도 있다. 박 대원은 2005년 계명대 원정대의 등반대장으로 초모랑마를 등정한 뒤 하산하다 조난당했다.

이석훈 감독의 <히말라야>는 엄홍길 대장이 박무택 대원 등 3명의 시신을 거둬오기 위해 떠났던 2005년 휴먼원정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박 대원의 시신이 있는 곳은 해발 8750m ‘데스존’이다. 공기가 희박하고 지형이 험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의 지역이다. 제 몸 하나 간수할 수 없는 곳에서 동료의 시신을 운구해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 산악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극 중 엄홍길(황정민 분)과 박무택(정우 분)은 아예 실명을 쓴다.

등반대에서 산악대장은 제왕적 리더십을 갖는다. 영화 속에서 엄홍길 대장은 칸첸중가 정상 아래서 기상이 악화되자 “나혼자 오르겠다”며 단독 등반에 나선다. 정상 등반을 위해 모든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대원들의 표정에는 ‘왜 우리 의사 한마디 물어보지 않느냐’는 불만이 가득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곤란한 문제에 부닥쳤을 때 여럿이 머리를 맞대면 유리할 때가 많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와 최고의 대책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갈 때도 있다. 아주 강한 응집력을 보이는 집단은 의사결정을 할 때 만장일치에 도달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이 때문에 다른 대안을 꼼꼼히 토론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때가 있는데, 이를 ‘집단사고’라고 한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특별자문위원회는 쿠바에서 미국으로 탈출한 난민들을 훈련시켜 쿠바의 피그스만을 침공하는 작전을 만장일치로 승인한다. 이 작전은 대실패로 끝났다. 훗날 케네디 대통령은 “어떻게 내가 그렇게 바보 같을 수가 있었을까”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왜 최고의 엘리트집단이 내린 판단이 실패를 했을까. 미국 예일대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1972년 출간한 <집단사고의 희생자들>이라는 책에서 ‘집단사고’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강한 폐쇄성과 획일성, 과신이 겹치면 집단은 낙관론에 취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수가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 ‘눈치 없는 사람’이 돼 따돌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리더가 직접 제안했을 때 엘리트 간부들은 거부하기 힘들다. 집단사고의 대표적인 사례로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를 종종 거론한다. 사전에 위험성이 감지됐지만 간부들이 모인 회의에서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기상 악화로 50여일간 시신 수습을 하지 못하자 엄홍길 대장은 “할 만큼 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대원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다. 반드시 무택이를 데려오자”며 서로를 격려한다. 대원들은 다시 산을 오르지만 꽁꽁 얼어버린시신을 운구하기란 쉽지 않다. 엄 대장이 물었을 때 대원들이 “그만두자”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에베레스트 등반대는 폐쇄성과 획일성, 과신이 최고인 집단이다. 이런 조직은 집단사고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나 싫다고 혼자 안 한다고 할 수 없다.

영화 속 경제

대원들의 부상이 잇따르자 엄 대장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며 마침내 포기한다. 그러면서 “내가 이기적이었다”고 절규한다. 박무택 대원의 시신 수습을 갈망하는 엄 대장에게 대원들은 강력하게 반대할 수 없었다. 엄 대장이 집단사고에 계속 빠져 있었더라면 나머지 대원들도 위험했을 것이다. 리더의 자리는 참 어렵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