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새정치연합, 세 가지 대안

수도권 의원들, 문·안 공동 비대위원장 제안… 조국 교수는 문 대표 사퇴 의견

“누가 안철수 전 대표와 통하나?”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친노로 분류되는 의원의 하소연이다. 이 의원의 설명은 문재인 대표 측에서 안 전 대표의 정확한 의향을 알고 싶으나 이를 알 만한 안철수계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일반적으로 당내 계파의 수장이라면 협상의 전권을 건네받은 의원이 있게 마련이지만, 안 전 대표는 다르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의원의 설명이다. 여기에는 안 전 대표가 탈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가 ‘탈당설’이 흘러나오자 고심하고 있는 친노 측의 입장이 드러나고 있다. 또 다른 친노 측 핵심인사는 “안 전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협상을 할 수 있는데,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중진 의원들은 전당대회 개최 언급
안 전 대표의 선택이 궁금한 것은 비노 측도 마찬가지다. 비노 측 강경파 한 의원은 기자에게 “과연 안 의원이 탈당할 것이냐”고 물었다. 친노에 맞서고 있는 비노 측으로서는 안 전 대표의 결정이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어차피 탈당으로 몰린다면 안 전 대표의 탈당이 신호탄이 되고, 탈당의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안 전 대표의 결정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내 의원들의 움직임은 더욱 다급해졌다. 최악의 경우 안 전 대표의 탈당이 분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다시 당선돼야 하는 의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분당이 되면 어느 지역에서든 당선이 어렵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보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최후의 카드로 탈당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새정치연합 안팎에서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대안이 제시됐다. 수도권 의원들이 내놓은 문·안 비상대책위원회안과 조국 서울대 교수가 내놓은 비대위안, 그리고 중진 의원들이 내놓은 비대위안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12월 6일 국회 정론관에서 혁신전당대회 개최를 거듭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후 인사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이 가운데 수도권 의원들이 내놓은 문·안 비대위안은 안 전 대표와 비주류 측에서 보기에 가장 불만족스러운 안이다. 문 대표와 안 전 대표가 공동 비대위원장 체제를 꾸린다는 것이다. 문 대표가 대표에서 공동비대위원장으로 바뀐다는 것이지만 비노 측은 그동안 친노와의 불신 때문에 문 대표의 공동비대위원장직마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안 전 대표를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앉혀놓고 실제로는 친노 측이 모든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공동비대위원장 감인 안 전 대표 역시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안 전 대표 측에서는 이 안이 문·안·박의 변형이라며 평가를 절하했다. 주류 측 의원으로 분류되는 정청래 최고위원은 “여러 가지 안 중에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과연 그 안을 안 전 대표가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국 교수안과 중진 의원안은 문 대표의 사퇴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비주류 측의 관심을 끌고 있다. 조국 교수는 12월 8일 페이스북을 통해 비대위 구성을 제안했다. 조 교수는 “문재인 대표는 당 대표로서 n분의 1로 합류하고 안 의원도 비대위원으로 합류한다. 비대위원장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맡거나 제3자를 합의추대한다. 현행 최고위원회는 권한을 비대위에 위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교수는 비대위의 전제조건으로 혁신위와 안 전 대표의 혁신안 실천을 내걸었다. 그동안 주류 측 인사로 분류된 조 교수의 주장에 당내 일부에서는 공감을 표했다. 비주류 측 일부에서는 제3자가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 걸음 나아간 제안으로 평가했다. 한 비주류 측 인사는 “획기적인 제안이고 공감이 가나 ‘버스가 이미 떠났다’”고 말했다. 한 친노 측 의원 역시 “좋은 방안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안 전 대표의 수락 여부를 본다면 늘 때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친노·비노 모두 안 전 대표 결정에 촉각
중진들이 내놓은 중재안은 세 가지 안 중 친노 측으로서는 가장 버거운 안이다. 11일 3선 이상 중진 모임에서는 “1. 문·안이 협력하는 가운데 비대위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 2. 전당대회 문제는 비대위가 협의하여 결정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1항은 수도권 의원안이나 조국 교수안에서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2항이 전당대회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주류 측을 자극시켰다. 전당대회 개최는 안 전 대표가 제안한 혁신전대를 모양새 있게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류 측은 전당대회가 혁신이 아닌 분열이 될 수 있다며 강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문 대표는 이날 중진들에게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문 대표는 “지난번 재신임 제안 때 중진들의 중재안을 받아들여서 수용한 바 있다”면서 “중진의원들께서 당 대표를 흔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문 대표의 최측근인 최재성 총무본부장이 중진 의원 모임에 들어가 중진 의원들의 중재안이 “당헌에 위배된다”고 주장할 정도로 주류 측은 격앙됐다.

중진들이 이 같은 안을 낸 배경에는 공멸에 대한 위기감 증폭이 원인이 됐다. 당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문 대표가 다선 중진 의원들을 물갈이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특정 중진이 거론되며 그 대상자가 몇 명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최근 문·안 갈등이 고조되면서 두 정치인 사이에 혁신 경쟁이 벌어졌다. 문 대표는 혁신위의 혁신안, 안 전 대표는 10대 혁신안을 내놓았다. 안 전 대표가 문·안·박 연대를 거부하자, 문 대표는 고강도 혁신 드라이브를 예고하고 직접 실천에 옮겼다.

혁신의 칼날이 날카로워지면서 그 대상이 일부 중진 의원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중진 의원에게로 향하게 된 것이다. 한 친노 의원은 “모든 문제는 의원들이 공천에 대한 위기감을 갖게 된 데서 비롯됐다”면서 “총선 기간이 다가오면 해도 될 일을 너무 일찍 한 결과”라고 말했다.

중진들의 중재안은 곪고 있던 고름을 터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최재성 본부장은 따로 기자회견을 열어 “기존의 봉합질서로 회귀해야 할 상황이라면 문재인 대표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체제”라면서 “그 길로 간다면 나부터 단호히 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이야기들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터져나온 고름이 치유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병을 악화시킬지는 알 수 없다. 한 주류 측 인사는 “두 정치인은 보는 시선이 전혀 다르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잠시라도 마주앉아 있을 수 없다”고 표현했다. 이 인사는 “안 전 대표는 외통수만 두고 있다”면서 “문 대표 역시 2002년 대선 때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묵묵히 가다 보면 국민들이 결국 문 대표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성 본부장을 비롯한 주류 측 인사들의 ‘플랜B’가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이 인사는 “이제는 당내 갈등 프레임에서 벗어나 당 외부와 연대하는 더 큰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