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4월 이야기… 첫사랑에 대한 강렬한 기억 ‘초두효과’

설렘, 기쁨, 불안함, 답답함…. 첫사랑은 누구에게 환상처럼 다가온다. 첫사랑은 서툴 수밖에 없지만, 그렇기에 더 애틋하고 오래 기억이 남는다. 첫사랑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순간, 누구나 소년과 소녀가 된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는 봄날 벚꽃 같은 화사한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홋카이도에 사는 우즈키(마츠 다카코 분)는 도쿄에 있는 무사시노 대학에 진학한다. 가족을 떠나 시작되는 첫 자취생활이다. 이웃에 인사를 하러 가지만 동네사람들은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친구들은 직설적인 질문을 던져 당혹스럽게 한다. 타지에서 시작하는 대학생활은 모든 게 낯설다. 자전거를 마련한 우즈키는 한 서점을 찾아간다. 무사시노도 서점이다. 거기에는 무슨 사연이 숨어 있을까.

벚꽃의 낙화, 비오는 거리, 바람부는 언덕…. <4월 이야기>는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 러닝타임 106분의 짧은 영화다. 학과 친구인 사에코가 우즈키에게 묻는다. “이 학교로 온 이유가 뭐야?” 우즈키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다. “아… 그게 뭐랄까… 이래저래 캠퍼스도 좋고….” 알고 보니 무사시노 대학에는 우즈키가 좋아하던 짝사랑 선배, 야마자키가 다니고 있었다. 1년 전 봄 야마자키는 무사시노 대학으로 떠났고, 우즈키는 무사시노 대학 입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우즈키가 기억하는 야마자키 선배는 ‘진짜 멋있고 똑똑한 선배’다. 선배는 밴드활동도 멋졌다. 우즈키는 생각한다. ‘넓은 들판에서 기타를 치는 선배의 모습이 내 마음 속의 벽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그림처럼 남아있다’고.

누구든 첫사랑은 잘 잊지 못한다. 첫사랑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 것은 ‘초두효과’ 때문이다. 초두효과란 먼저 제시된 정보가 뒤에 제시된 정보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처음 경험한 것들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오랫동안 기억되는 효과다. 초두효과는 우리 뇌가 가진 한계 때문에 발생한다. 뇌는 처음에 들어온 정보를 입력한 뒤 그 뒤에 들어오는 정보는 이에 맞춰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처음 들어오는 정보는 나중에 들어오는 정보보다 더 주의를 기울다는 것도 초두효과의 원인이다.

솔로몬 애쉬의 실험이 유명하다. ‘ㄱ은 똑똑하고 근면하다. 하지만 충동적이며 비판적이고 고집이 세고, 질투심이 강하다’와 ‘ㄴ은 질투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비판적이고, 충동적이다. 하지만 근면하고 똑똑하다’라는 질문이 있다. 질문은 단어를 나열하는 순서만 거꾸로 했을 뿐 똑같은 단어를 썼고, 똑같은 길이로 기술했다. 그런데도 인상이 달라진다. ㄱ은 대체로 성실한 사람 같고, ㄴ은 문제가 많은 사람같이 느껴진다. 최초에 입력된 정보가 무엇인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졌다.

만남에서 첫인상이 중요한 이유도 초두효과로 설명된다. 초두효과가 작용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미국 다트머스대의 심리·뇌 과학자인 폴 왈렌 교수의 연구를 보면 뇌가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신뢰 여부를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017초다. 면접을 볼 때나 영업을 위해 뛸 때, 혹은 상견례에서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도 ‘초두효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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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자키 선배를 만난 우즈키는 “선배, 아직도 밴드를 하세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야마자키 선배는 “아니”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우즈키가 야마자키 선배에 대해 ‘진짜 멋지고 똑똑한, 기타를 잘치는 선배’로 기억하는 것은 초두효과의 전형이다. 그 초두효과는 우즈키 실력으로는 어려웠을 무사시노 대학을 목표로 삼아 공부할 수 있는 힘을 줬다. 우즈키는 “난 그걸 사랑의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를 ‘초두효과의 기적’이라 바꿔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