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칵테일파티 효과’

잠이 들면 오늘 일어난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면 내일은 어떤 의미일까. 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일상은 어떻게 연결이 될까.

로완 조페 감독의 영화 <내가 잠들기 전에>는 이런 의문을 스릴 있게 엮는다. 크리스틴은 매일 아침 남편 벤의 품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남편이 낯설다. 크리스틴은 전날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마흔. 하지만 기억은 스무 살에서 멈춰 있다. 지난 20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이 남자를 어떻게 사귀었는지, 결혼은 어떻게 했는지, 어떤 친구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아침마다 비밀스럽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신경심리학자인 내쉬 박사다. 그는 2주째 크리스틴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내쉬 박사와 상담을 하면서 10년 전 자신이 큰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는 모른다. 점점 진실에 다가갈수록 기억을 되찾고 싶은 그녀의 욕구도 커진다. 과연 남편은 무엇을 속이고 있는 것일까.

크리스틴은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를 이용하기로 한다. 전날 잠들기 전 그녀는 그녀가 겪은 일을 동영상 파일로 녹화한다. 다음날 아침 기억이 깡그리 지워져버린 채 일어난 그녀는 저장된 자신의 동영상을 보며 하나씩 조각을 맞춰나간다. 크리스틴은 남편 벤이 자신을 위해 희 생한 것이 틀림없다는 추론에 이른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실토한다. 벤은 따져 묻는다. “왜 그걸 말 안했어!” 크리스틴은 말한다. “당신을 믿어도 될지 확신이 없었으니까!”

크리스틴이 벤을 의심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남편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건성으로 답할 뿐이다. 그녀는 내쉬 박사를 신뢰했다. 내쉬 박사의 조언 한마디 한마디에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내쉬 박사만이 그녀가 기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건성으로 듣는 얘기는 들어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기억도 잘 안난다. 급기야는 답답해진 상대방이 “내 말 듣고 있어?”라며 짜증을 낸다. 이처럼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선택적 주의를 ‘칵테일파티 효과’라고 부른다. 아무리 붐비는 곳에서라도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잘 들린다. 마치 칵테일파티처럼 시끌벅적한 곳에서도 자신이 듣고자 하는 소리를 듣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칵테일파티 효과’라는 이름이 붙었다.

칵테일파티 효과는 인간 뇌용량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다.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한정되기 때문이다. 주변에 아무리 많은 정보가 쏟아져도 뇌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같은 영화를 보는데도 어떤 사람은 자동차가, 어떤 사람은 주인공의 옷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자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고, 후자는 패션에 민감한 사람일 수 있다. 배고플 때는 유독 먹는 광고가 눈에 잘 들어오고, 밤 시간에는 속옷 광고에 집중도가 높다. 저녁 시간대에 먹거리 광고와 속옷 광고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배고플 때 대형 할인마트에 가지 말라고 한다. 허기를 느낄 때면 이것저것 주워담게 되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자도 자신이 투자한 종목에 대한 정보가 유독 잘 들리고 잘 보인다.

영화 속 경제

칵테일파티 효과는 개인의 편견을 키울 수 있다. 듣고 싶은 말만 들리는 나머지 자신의 생각은 더욱 공고히 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는 소통하기가 힘들어진다. 리더의 경우는 칵테일파티 효과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 나에게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들리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주변에는 아첨꾼만 득실거리고 충신은 사라진다. 정보가 한쪽으로 쏠리다 보면 커다란 판단 실수를 할 수 있다. 만약 ‘불통’의 리더가 대통령이라면 아주 큰 문제다. 국가와 국민 전체를 엉뚱한 데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