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황제를 위하여>…성공이 눈앞, 포기 못하는 ‘니어미스 효과’

돈과 주먹, 여자. 느와르 영화의 기본 공식이다. 느와르란 범죄와 폭력세계의 삶을 다룬 영화를 말한다. 프랑스 비평가들이 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1950년대 할리우드 B급 영화를 보며 붙인 명칭이다. 박상준 감독의 <황제를 위하여>는 한국형 느와르의 전형이다.

승부조작에 연루된 야구선수 이환(이민기 분)은 자기 몫의 돈을 찾으러 갔다가 부산 최대 규모의 조직과 조우한다. 사채업과 추심업을 겸하는 황제 캐피탈의 대표 상하(박성웅 분)는 다른 조직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환을 끌어들인다. 상하는 “동정을 버리면 동경을 받는다”고 말할 정도로 차갑고 냉철하다. 하지만 “내 사람들이 등 돌리는 것, 나는 절대 못 본다”는 의리파다. 이환은 상하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커가지만 도박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상하의 말에 변심을 결심한다. 상하는 자신을 돌봐주던 스폰서의 계략에 구속되고, 이환은 황제 캐피탈의 새 대표가 된다.

[영화 속 경제]<황제를 위하여>…성공이 눈앞, 포기 못하는 ‘니어미스 효과’

상하는 이환에게 전격적으로 불법 스포츠 베팅 사이트를 맡긴다. 전직 야구선수여서 야구 베팅에는 대충 감이 온다는 이환의 능력을 높이 샀다. 황제 베팅 사이트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상하는 이환이 도박사업에서 손 떼게 한다. 아직 이환에 대한 승부조작 기사가 뜨는 상황. 상하는 말한다. “힘들게 합법으로 돌려놨는데, 이환이 맡았다고 소문나면 좋을 것이 없다.” 이환은 반발한다. “지금 여기서 손을 떼라는 게 말이 됩니까. 제가 그거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한지 아시잖습니까”라고. 이환의 분노는 상하에 대한 배신으로 이어진다.

이환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이환의 심리는 ‘니어미스 효과(near-miss effect)’로 설명된다. 니어미스 효과란 성공에 거의 근접했다가 실패했을 때 크게 아쉬워하는 심리를 말한다. 같은 숫자나 그림이 연속으로 3개가 나오면 당첨이 되는 복권이 있다. 2개는 같은 숫자가 나왔는데, 마지막 하나가 달리 나오면 너무너무 아쉬운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한 번만 더”하면서 다시 복권을 사서 긁어보게 된다.

니어미스 효과는 도박중독을 설명하는 심리현상으로 많이 쓰인다. 슬롯머신은 7이 연속 3개가 나오면 돈을 따는 게임이다. 2개는 7이 나오고 나머지 하나가 7 언저리에 걸치면 도박사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이 때 “돈을 거의 딸 뻔했다”며 무지 아쉬워한다. 이렇게 돈을 잃으면 십중팔구는 다시 도박판으로 달려간다.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하다. 조금만 더 공부하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한 해만 더” “한 해만 더” 하면서 고시촌을 떠나지 못한다. 선거낭인들도 그렇다. 박빙으로 선거에서 패한 후보자는 틀림없이 다음 선거에 또 나온다.

바둑이나 스포츠도 니어미스 효과가 크다. 불계패나 콜드게임으로 지면 도전을 꺼리지만 반 집이나 1~2점 차로 지면 십중팔구는 “한 판만 더”를 외치게 된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서도 니어미스 효과는 영향을 미친다. 수익률이 좋았던 펀드가 갑자기 급락한 경우, 집값이 크게 올랐다가 손실로 전환된 경우라면 아쉬움이 너무 커진다. 다시 쌈짓돈을 모아서라도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으로 달려간다. 집착이 생기는 것이다.

영화 속 경제

이런 니어미스 효과를 마케팅은 주목한다. 대형할인 마트의 한 코너에서 “지금부터 선착순 10명에게 반값”을 외치면 그쪽으로 옮기는 발걸음이 괜히 빨라진다. 11번째가 돼서 아쉽게 기회를 놓치기 싫기 때문이다. 상하는 이환에게 “베팅사이트 건은 너무 상심하지 말라”며 달래지만 이미 이환은 돈과 권력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사람 마음이란 그렇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