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명’ 흔적 없이 사라지는 멕시코 소녀들

멕시코주에는 2011년과 2012년 여성과 소녀 1258명이 실종됐다. 그 중 53%가 10~17세다. 같은 기간 여성 448명은 남성에 의해 살해됐다. 시신들은 공원, 길가, 쇼핑몰 등에서 발견됐다. 명백한 여성 증오 살해다.

소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주검으로 발견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다. 왜 사라졌는지, 어디로 갔는지, 누가 잡아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라지는 소녀들은 하루에 7명꼴로, 1년에 2500명에 이른다. 여성 안전이 취약하고 인신매매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멕시코의 실태다.

영국 BBC는 지난 14일 ‘흔적 없이 사라지는 여성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타전하며 “멕시코에서 해마다 여성과 소녀 수천명이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멕시코주에 사는 엘리자베스는 10대 딸 카렌이 사라진 직후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렌은 14세인 2013년 공중화장실에 가야 한다며 집을 나간 뒤 사라졌다. 돈도 휴대폰도 없었고, 다른 옷도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 엄마는 3시간 동안 샅샅이 뒤져도 딸의 행방을 찾지 못하자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멕시코에서는 심지어 어린아이가 없어져도 72시간이 지나야만 사건이 접수된다. 그때까지 부모는 자기 힘으로 딸을 찾아야 했다.

얼굴 분장을 한 멕시코 여성이 ‘더 이상 여성 살해는 안 된다’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 PV엔젤스

왜,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몰라
딸의 계정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해봤다. ‘페친’이 무려 4000명이나 됐다. 그 중 부모의 시선을 빼앗은 남성이 있었다. 그는 반라의 여성과 사진을 찍었고, 총도 갖고 있었다. 사진 속 여성들은 모두 10대 소녀 같았다. 아버지 알레잔드로는 “그놈은 국경, 여행 등을 거론하며 마치 마약거래상처럼 말했다”며 “자기 전화번호를 딸에게 알려주며 조만간 딸을 보러 오겠다는 말도 남겼다”고 말했다.

부모는 곳곳에 포스터도 붙이고 방송 광고도 했다. 덕분에 실종 16일 만에 딸을 찾았다. 딸은 버스 터미널에서 발견됐다. BBC는 “용의자가 방송 등으로 얼굴이 알려지면서 압박을 받아 소녀를 뉴욕으로 데려가려는 것을 포기한 것 같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그놈은 딸에게 여행을 시켜주고 돈도 벌게 해주며 유명한 가수로 만들어주겠다며 꼬드겼다”고 전했다.

2014년 10월에는 샤마 레무스라는 17세 소녀가 사라졌다. 샤마도 온라인 유혹에 넘어갔다. 샤마는 소셜미디어에서 채팅하기를 좋아하는 수줍은 소녀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컴퓨터를 하면서 보냈다. 그녀의 방에는 가수들 사진, 애니메이션 캐릭터, 화장품, TV, DVD 플레이어 등이 있었다. 샤마가 사라진 날, 방은 엉망진창이 됐고 옷도 몇 벌 없어졌다. 이웃의 전언에 따르면 샤마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찾아온 어떤 남자와 함께 큰 가방 2개를 갖고 어디론가로 갔다.

엄마 네이다는 딸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뒤졌다. 그러다가 딸이 사라지기 직전 엄청난 위협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네이다는 “그놈은 딸이 함께하지 않으면 인생을 망쳐버린 뒤 그걸 소셜미디어에 올리겠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네이다는 “평소에 소셜미디어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딸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면서 “누구에게든 절대 개인정보를 주지 말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부모는 휴대폰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연락하는 등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나서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멕시코 여성들이 지난 7월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실종된 소녀들의 사진과 명단을 목에 걸고 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APP연합뉴스

신원 파악 어려워 경찰 수사 25% 미만
지난 7월 멕시코 주지사는 일부 지역에서 성폭력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샤마가 살던 에카테페크를 포함해 11곳을 성폭력 경고지역으로 선포했다. 샤마의 부모는 “하지만 샤마가 돌아올 가능성은 무척 낮다고 본다”며 “우리는 이곳이 얼마나 불안한 곳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멕시코주에서는 14세 소녀 다이아나 안젤리카의 장례식이 열렸다. 2013년 9월 실종된 다이아나의 두개골과 뼈가 발견된 곳은 멕시코주를 관통하고 있는 대형 운하였다. 온갖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다. 지난해 이곳에서는 대규모 수색작업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짐승과 사람의 뼈 7000여개가 발견됐다. 다이아나의 뼈와 두개골이 담긴 가방도 있었다. 그 가방은 평소 그가 갖고 다니던 것이었다. 지난 1월 추가적인 유전자 조사가 이뤄져 그 뼈가 다이아나 것이라는 게 최종 확인됐다. 엄마 푸엔테스는 “정부 당국이 최선을 다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딸이 왜,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며 “다만 딸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고 편하게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주에는 2011년과 2012년 여성과 소녀 1258명이 실종됐다. 그 중 53%가 10~17세다. 같은 기간 여성 448명은 남성에 의해 살해됐다. 시신들은 공원, 길가, 쇼핑몰 등에서 발견됐다. 명백한 여성 증오 살해다. 멕시코주는 무척 빠른 속도로 도시화되고 산업화되고 있다. 인구는 1700만명에 이르렀고, 그 중 다수는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여성 증오 살해는 북부 치와와주에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발생했다. 시우다드 후아레스는 미국 남부 텍사스주 엘파소와 다리로 연결된 멕시코 북부 도시다.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려는 이민자들이 모이는 곳이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마약이 반입되는 루트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한 범죄도시가 된 지 오래다. 이곳에서는 1993년부터 2005년 사이 여성 379명이 남성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은 성폭행을 당했고 시신도 크게 훼손됐다. 이 사건은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여성 증오 범죄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큰 경종을 울린 계기가 됐다.

지난 7월에는 이곳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나왔다. 여성 11명을 살해한 멕시코 갱 단원 5명에게 각각 697년 징역형이 선고된 것이다. 697년 형은 여성 살해혐의로 내려진 징역형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지난 4월 시작돼 증인만 200여명 이상이 출석해 관심을 모은 이번 재판은 3개월여 만에 그렇게 마무리됐다. 치와와주 검찰총장은 “용의자들은 젊은 여성들을 꾀어 매춘과 마약 판매에 빠지게 만들었다”며 “이들은 이용가치가 떨어진 여성들을 살해한 후 유기했다”고 말했다.

멕시코는 2008년 사법개혁으로 자국 안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납치·인신매매·살인사건을 줄이기 위해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간 여성 대상 살인사건들을 여성 증오 살해로 인정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소극적으로 대처해온 멕시코 정부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취한 조치다. 멕시코 국립자율대학교 법률전문가 신디 갈리시아는 “그러나 희생자들은 대부분 신원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실종된 소녀들은 모두 투명인간이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국가시민여성살해관측소(NCFO)에 따르면 멕시코에서는 2012~2013년 여성 3892명이 살해됐으나 이 중 16%만 여성 살해로 다뤄졌다. 유엔은 멕시코에서는 해마다 여성과 소녀 2500명이 실종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 중 수사가 이뤄진 것은 4분의 1도 안 되며, 그 중 기소건은 2% 미만이다. 멕시코 정치인이자 변호사인 엘리아나 가르시아 라구나는 “정부가 나서고 있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 때문에 실종자 부모들은 수색팀 또는 유전자은행 등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우리 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이라는 단체에서 일하는 오르티즈 리베라는 “실종된 소녀들을 찾는 활동을 하면서 나와 가족은 몇 차례 살해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세훈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h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