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네가 노력했는지 다 알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닌 다른 이유들로 많은 노력들이 공중분해되거나 경쟁팀에게 빼앗기는 그런 일들에 분통터지는 기분을 왜 숨겨야만 하는 것일까?

나의 직장 스펙트럼은 그렇게 넓지 않다. 동종업계에서 ‘한 우물’을 팠다는 쓸데없는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는 그런 ‘일못’이다. 감사, 정리해고 등으로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일못’인 나는 상사와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사를 결정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동종업계’를 강조하며 나쁜 인상을 심어주지 않고 마무리를 잘하라는 여러 당부의 말에 나는 남은 일에 매진했다. 남은 일 중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여행 관련 책 출간작업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하니 뭐든지 최대한 심플하게 움직이려는 작가와의 마찰도 있었다. 심지어 신혼여행을 가서도 작가의 답사 스케줄을 컨트롤하기 위해 전화기를 손에 놓지 못하는 모습에서 신랑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것에도 담담하게 견뎌냈다. 작가도 아니고 번역가도 아닌 주제에 너의 역할이 뭐가 그리 크고 대단한 일을 한다고 애착을 갖는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마음에 더 고집스럽게 매달렸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노력의 결과는 어땠을까? 이 글을 쓰는 이가 ‘일못’이어서 그런 것일까? 그 책들은 너무 허무하게도 박스조차 제대로 뜯어지지 못한 채 어두운 창고 한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프로젝트 담당자조차 그 위치를 잊을 만큼 희미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직장인들은 자신이 열정을 쏟은 일들이 쓸모 없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직장상사 또는 오너의 업무 추진방향(경영이념)으로 하루아침에 하던 일에서 손을 떼고 다른 일을 배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지만 반복할 때마다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다. 이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벗어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나의 이력서의 ‘실패 후 극복경험’ 등 다양한 소재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실패 후 극복경험>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다른 여건상의 문제로 추진이 힘들어졌습니다. 노력한 만큼 아쉬움이 컸지만 다른 프로젝트에 매진함으로써 더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장점과 단점>
“저는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저의 생활 1순위에 두고 매사 추진하려고 노력하는 타입입니다. 그런 만큼 그 프로젝트의 성과가 좋은 방향이지 않을 때 매우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일에 빨리 적응해 일을 추진하려는 추진력이 저의 또 다른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뻔뻔하고 한심하다. 그렇지만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한 실패가 아닌데도 내가 변명을 늘어놓는 거지? 실패에서 잘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적응 잘하는 사람으로 포장하고 있는 꼴이라니…. 하루하루가 거짓으로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실패의 좌절감을 우리들만 느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닌 다른 이유들로 많은 노력들이 공중분해되거나 경쟁팀에게 빼앗기는 그런 일들에 분통터지는 기분을 왜 숨겨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여운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일을 저렇게 못하냐’라고 규정짓는 것일까?

많은 직장인들이 어떠한 보상을 바라기보다 자신의 직장이 전부인 것처럼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손에서 무언가를 빼앗고 미련을 버리기를 강요한다면 그들에게 그 미련이 정말 떨쳐질 수 있는 일인가 되물어보고 싶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오히려 애정을 가지고 사활을 걸지 않는 쪽은 당신들이 아닌가?”라는 말로 되갚아주고 싶다.

인간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 우리 ‘일못’ 직장인들에게 일을 하는 나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은 쉽게 떨쳐질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살며시 떠올려 보았다.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다 알아.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충분히 잘했어. 정말 고생했어.”

철없는 소리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벙어리 냉가슴을 안고 있는 ‘일못’들에게 소소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너무 잘하고 있어. 정말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