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사람의 향기가 묻어나는 집배원

부산 사상우체국에는 옥상텃밭이 있다. 폐기된 우체국 오토바이 적재함 30여개에서 방울토마토 등 먹거리 채소 묘종이 싹을 틔우고 있다. 성질이 급한 묘종은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다.

사상우체국 옥상텃밭은 화려하게 꾸며진 대저택의 정원보다 더 싱그럽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풀향기만이 아니라 사람의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사상우체국 정원’은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보태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나눔터다. 이 옥상텃밭은 사상우체국에서 22년째 일하고 있는 최선학 집배원(58)이 3년 전 재활용 차원에서 버려진 우체국 오토바이 적재함에 배추씨를 뿌리면서 시작됐다. 첫해 수확은 배추 100여 포기였다. 김장을 담갔다. 인근의 애바다 보육원 어린이들에게 보내졌다. 최선학씨는 “그저 키우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어오게 됐다”고 겸손해 하면서 “옥상텃밭은 이웃을 위한 것이지 집배원의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2014년 집배원 연도대상’의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한 최선학 집배원. | 우정사업본부 제공

시간과 사랑을 나누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을 위해 쓰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한순간도 숨 돌릴 여유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빡빡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집배원에겐 더욱 그렇다. 사실 집배원의 생활은 그 자체가 고달픔이다. 최 집배원은 보통 8시에 출근해서 그날 처리할 등기우편물·택배 등을 구분한 다음 9~10시에 배달에 나선다. 하루에 처리해야 할 우편물은 1500~2000통이다. 그 중 보다 신경을 써야 하는 등기우편물은 120~130건이나 된다. 많을 땐 200통쯤 된다. 오후 5시쯤 우체국에 돌아와서는 반송우편물을 정리하고 다음날 배달해야 할 우편물을 구분해야 한다. 오후 8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 바쁜 생활 속에서도 봉사하는 삶을 5년째 이어오고 있다. 옥상텃밭 가꾸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겐 친어머니처럼 돌보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 손자가 2010년 복싱경기를 하다가 뇌진탕으로 사망한 뒤 홀로 사는 할머니다. 쓸쓸하게 사시는 게 안타까워 한 달에 두 번씩 할머니를 찾아간다. 건강도 살핀다. 말동무도 되어 드리고, 생활물품도 사 드린다. 최씨는 “경남 남해에 사시는 저의 어머니와 비슷한 또래”라면서 “가까운 곳에 계시니 돌봐드리는 것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는 우체국의 봉사모임인 ‘365봉사단’의 일원이다. 한 달에 한두 번씩 불우이웃을 찾아 도배봉사 등을 한다. 복지관·경로당 등에서 어른들에게 점심식사 대접도 한다. 그가 배달을 담당한 사상구 모라3동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이 유난히 많이 사는 동네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손발이 되었다. 택배 발송, 공과금 납부 등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는다.

꽃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핀다. 남모르게 하는 봉사활동도 언제가는 알려지게 되어 있다. 최 집배원은 이런 공로로 지난 21일 ‘2014년 집배원 연도대상’의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우정사업본부가 전국 1만6000여 집배원 중 최고의 집배원을 선정해서 주는 상이다. 최 집배원은 “나보다 나은 사람이 많은데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영예로운 상을 받게 되어 부끄럽다”면서 “더 열심히 (봉사)하라는 채찍으로 생각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사람이 향기로운 여운을 지니려면 주어진 시간을 값 없는 일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 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향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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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쓴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의 한 대목이다. 옥상텃밭을 가꾸고 봉사하는 최 집배원이야말로 진정 향기나는 사람이 아닐까. 역부족인 듯하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