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우체통은 그 나라의 문화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우체통이 하나 서 있다. 매일 우체통 앞을 지난다. 누군가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낙서는 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8일 우체통은 종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낙서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우정사업본부는 매년 이맘때 ‘우체통 청소의 날’을 지정, 전국의 우체통에 대해 일제 정비에 나선다. 올해도 1만6000여개의 우체통을 손봤다. 겨우내 쌓인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 페인트로 덧칠한다. 무너진 밑돌은 다시 괴고 지워진 안내문은 다시 쓴다. 우체통은 우체국의 얼굴이다. 우체통에 세수와 화장을 시킨 셈이다.

우체통 외관을 깔끔하게 정비하는 것은 단지 이용편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체통은 거리의 문화상징물이기도 하다. 도시 이미지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사람의 왕래가 많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설치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 발 더 나아가 나라를 대표하는 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체통은 각 나라의 고유 문화와 전통의 향기를 담고 있다. 이 때문에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대접을 받기도 한다.

우정사업본부는 봄을 맞아 전국 1만6000여개의 우체통 도색, 대청소 등 우체국 시설에 대한 환경정비를 실시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대표적인 나라가 세계 최초로 우표제도를 도입한 영국이다. 원통형의 빨간 우체통은 빨간 전화박스와 트롤리버스(빨간 이층버스) 등과 함께 영국의 명품으로 인정받는다. 그 인기는 왕실 근위대와 기마병에 버금간다. 영국 우체통은 15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859년 소화전 모양의 빨간 우체통이 표준화된 이후 한 번도 그 디자인이 바뀌지 않았다. 늘 우중충한 날씨 속에 사는 영국인들에게 빨간 우체통은 그 자체가 활력소가 되는 모양이다.

북유럽을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스웨덴의 이동식 우체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법하다. 스웨덴은 유럽형 노면전철인 트램(스칸센 노선) 전동차의 맨 뒤칸 외벽에 노랑 우체통을 매달고 다닌다. 일명 ‘꼬리우체통’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꼬리우체통’은 1911년 무렵 처음으로 설치됐다. 1960년대 스칸센 노선이 폐선됐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도시 미관과 기능성 제고를 위한 새로운 디자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혁신적인 우체통으로 네덜란드 것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나는 우체국에 탐닉한다>의 저자인 모리이 유카는 빨간색 벽걸이식 네덜란드 우체통에 대해 “아래가 비스듬해서 문을 열기만 해도 안쪽에 들어 있는 편지까지 간단히 수집할 수 있는 획기적인 우체통”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우체통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특별한 장소에 상징성을 부여한 우체통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 아래 첫 우체통’(설악산 중청대피소), 가장 큰 우체통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거인 우체통’(광주 수완 호수공원), 1년 뒤에 받아보는 ‘느림보 우체통’(인천 영종대교 기념관), 12월 31일 낙조를 보며 쓴 편지를 담는 ‘송년우체통’(전남 가거도) 등이 유명세를 타고 있는 우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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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된 우체통은 길거리의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우체통 하나에 담기는 손편지는 하루 평균 8통에 불과하다. 당연히 우체통은 우리 주변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건 우체통만이 아니다. 문화상징물도 잃어가는 것이다. 우체통이 깨끗이 정비된 것을 계기로 가족과 친지에게 가장 깊은 정성이 깃든 선물, 손편지를 써보자. 한 통의 손편지가 문화지킴이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