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여성은 가정·직장 모두를 지키면 안되는가

욕심이 지나치다는 조롱 섞인 비난보다 좀 더 현실적이고 따뜻한 조언과 기혼여성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그런 환경과의 만남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결혼한 기혼여성이다. 결혼 전부터 야근과 출장이 잦았다. 결혼 후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휴일에도 근무해야 하는 건 각오한 바였다. 물론 주말부부인 우리에게 주말이 사라져버렸다. 늘 함께하지 못하는 배우자의 이해는 불만으로 바뀌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은 나에게 임신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꿈꿀 수 없는 비정규직인 나는 씁쓸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직장 내 출산휴가를 갔던 직원이 도움 받을 곳이 없어 바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부러운 마음에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는데, 잘못 짚은 것이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육아휴직을 신청했다는 한숨 섞인 말이 돌아왔다. 아니 왜 여성은 퇴사를 결심하고서야 육아가 가능한 것일까? 나중에 나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등 많은 생각들로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여성이 취업 면접 때 많이 받는 질문들이 있다. “남자친구 있나요? 결혼 계획이 있나요?” “결혼하겠네요? 회사를 얼마 못 다니겠네” 등등. 여성은 결혼, 임신과 육아로 입사 전부터 반쯤 일을 못하는 능력 없는 사람으로 평가돼 버린다. 실제로 그렇다. 일못유니온의 한 멤버는 승진의 기회에서 결혼과 임신의 가능성이 있으니 ‘부장’이 아닌 ‘부장 대리’로 승진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기혼 직장여성들은 일, 육아, 가정 모두를 지키려는 노력부터가 ‘일못’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우려도 괜한 걱정은 아닐 것이다. 회사 업무에 완전히 적응했는데 퇴사를 결정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 속이 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남성을 채용하는 것이 길게 보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유럽의회의 리시아 론줄리 의원은 자신의 자녀와 함께 의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장과 가정, 육아와 사회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의 분위기는 또 다르다. 일본의 모성 침해 피해자 지원단체인 ‘마타하라넷’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임신은 전염병 같은 존재다’, ‘임신을 한다면 일을 그만둬라, 낙태도 간단하다’는 등의 직장 내 폭언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maternity harassment(모성권 침해)’의 행위로 실제 결혼과 임신을 기피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어떨까. 최근 한 드라마에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한 여성에게 선배들이 아직 한국에서는 이르다고 한 소리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건 드라마일 뿐이다. 현실은 훨씬 심각하다. 한 소리 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얼마 전 ‘직장여성이 겪는 무한루프’(표 참조)라는 인터넷 유머를 보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여성들은 언제쯤이면 이 무한루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문득 ‘제도나 정책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본 원고를 준비하면서 여성 파트의 다른 전공자에게 관련 정부 정책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정책이라는 것이 각기 다른 곳에서 나오고, 유형도 제각각이라 정리하기가 꽤 까다롭다는 대답을 들었다. 연구자도 정리가 어려우면, 일반 직종의 여성들은 그 혜택이라는 것을 과연 제대로 누리고 살 수 있을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필자도 사랑하는 자녀를 세상에서 만나보고 싶다. 이제껏 쌓아놓은 커리어도 지키고 싶다. 욕심이 지나치다는 그런 조롱 섞인 비난보다 좀 더 현실적이고 따뜻한 조언과 기혼여성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그런 환경과의 만남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