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원곡에 깃든 ‘세월의 감수성’은 재현 불가

오정해는 ‘목포의 눈물’을 절절한 판소리 한바탕처럼 불렀다. 아주 훌륭하게 준비된 볼 만한 공연이었고, 귀담아 들을 만한 정성스런 노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설움 대신 가창이 압도하고 항구의 눈물 대신 노래 잘하는 오정해가 전면에 두드러졌다.

4월 2일, 호남선 KTX가 개통했다. 2009년 12월 4일 기공한 이후 5년 4개월이 걸린 대역사가 마무리된 것이다. 서울 용산에서 광주 송정까지 1시간33분 만에 주파한다. 물론 이 노선은 하루 한 차례뿐이고 대체로는 1시간40분대를 넘지만, 그래도 이만한 속도는 호남지역뿐만 아니라 국토 전체의 균형과 속도에 분기점이 될 만하다. 목포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목포까지 왕복하는 시간 또한 상전벽해로 짧아졌다.

목포! 이렇게 느낌표를 붙이고 나면 어김없이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이난영 사후인 1974년 발매된 앨범의 표지. |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1935년, 문일석 작사에 손목인이 곡을 붙여 발표한 곡으로 이난영이 노래를 불렀다. 그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불렀지만 아무래도 원본의 애절함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게다가 이난영의 오래전 녹음은, 그 음향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에서, 오히려 오랜 세월의 설움과 슬픔을 비집고 들려오는 듯한 애틋함이 있다.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애절함
유튜브로 옛 영상을 찾아보면, 후의 한 방송에서 박시춘의 기타 반주에 맞춰 한복을 곱게 입은 이난영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이 노래를 부른다. “사아아~공의 배햇~노래 가하아무울 그리며~ 사~~암학도오오~ 파도호오~ 깊이 스며어어~드~으는데…” 20세기 중엽의 흑백 화면 속 애절함이 21세기 초엽의 어수선한 봄날에 스산하게 울려퍼지는 것이다.

이 영상 대신 1935년, 일본 레코드 회사인 ‘오케 레코드’가 발표한 원곡을 들어보면, 음반사 소속 연주단 ‘오케패밀리뮤직’이 제법 빠른 속도로 연주를 하고 그 선율 위로 19살 이난영(1916년생)의 애틋하다기보다는 청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암~백 녀헌~ 원한 품은 노오~저억봉 밑~~에 님 자~아~취~ 완연~하~다~ 애다~알프은~ 저어엉~조…”

19살의 이난영이든 해방 이후 보다 원숙해진 이난영이든, 어쨌거나 이 노래의 원곡, 그 소리는 애처럽고 구슬프다. 이렇게 한 번 원본성이 확정되면, 노래 부르는 실력 여부를 떠나서, 일단 이 원본성이 기준이 된다.

물론 개항 이후, 작은 어촌 마을이 근대적 항구로 급변한 목포를 다룬 노래가 이것만 있는 게 아니다. 일제시대에 관변에서 작곡된 행진곡풍의 가곡도 많았고 해방 이후에도 구슬픈 ‘목포의 눈물’ 대신 활기찬 노래를 일부러 짓고 배포한 일도 많았다. 1930년대의 ‘목포 행진곡’, 해방 이후의 ‘유달산 아침’, 1960년대의 ‘목포시민의 노래’ 등이 있었는데, 그러나 ‘목포는 항구다’ 같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몇 곡을 제외하고는 이런 관변 음악들이 대중들의 일상에 스며들기는 어려웠다. ‘목포의 눈물’이 너무 한스럽다 하여 1980년대에 목포시에서 주관하여 ‘목포의 웃음’, ‘목포의 찬가’ 같은 노래도 만들었으나 행사용에 그쳤다. 아무래도 목포는 ‘목포의 눈물’로 인하여 기억되고 완성되는 20세기를 살아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 노래를 누군가 다시 부르고자 한다면 우선 이 노랫가락에 스며들어 있는 설움부터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선창가의 낡은 술집에서, 방파제 너머의 파도소리라든지 저 멀리서 들려오는 호남선 완행열차의 기적소리와 섞여서, 들릴 듯 말 듯 들려오는 ‘목포의 눈물’의 서정을 우선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지난 3월 21일, KBS2의 인기 음악방송 <불후의 명곡>에서 이 노래가 다시 한 번 가창의 반열에 오른 이의 목소리를 얻었다. 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그러나 그 이전부터 이미 판소리의 명창 가통을 잇는 재목으로 평가받아온 오정해는 자신의 고향을 대표하는 이 노래를 정성껏 불렀다. 그런데 이 방송을 위하여 처음 부른 것은 아니다. 정통 판소리 계보를 잇는 일로부터 너무 멀어진 듯하여 매우 안타깝지만, 오정해는 이런저런 무대가 있을 때마다, 그러니까 ‘오정해의 소리 이야기’ 같은 대중적인 공연 무대에서 이 노래를 고정 레퍼토리로 자주 불러왔다. “자장가보다 더 먼저 듣고 자란 노래”라고 말할 정도인 이 노래를 오정해는 <불후의 명곡>에서, 진부한 표현을 반복한다면, ‘혼을 담은 가창력’으로 불렀다. 흰색의 시스루 한복 상의와 드레스에 가까운 한복 치마를 입은 오정해는 수준 높은 현악 위주의 반주 위에 올라타서는 ‘목포의 눈물’을 절절한 판소리 한바탕처럼 불렀다. 아주 훌륭하게 준비된 볼 만한 공연이었고, 귀담아 들을 만한 정성스런 노래였다.

가수 백설희의 1993년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정해가 혼을 다해 부른 ‘목포의 눈물’
그런데 원곡의 두 배가 넘게 5분여 동안 진행되는 이 노래는, 어느 순간부터 설움 대신 가창이 압도하고 항구의 눈물 대신 노래 잘하는 오정해가 전면에 두드러졌다. 간결한 피아노 전주, 바이올린과 첼로의 협연, 아코디언과 그 밖의 악기들, 특히 강렬한 타악기까지 조금씩 더해지고 겹쳐지면서 얼핏 라틴 탱고 방식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오정해 특유의 창법이 전개되는데, 어느 순간, 애달파서 노래조차 부를 기력이 없어 보이는 지극한 슬픔 대신 풍성한 반주에 넘실거리는 오정해의 성대가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연주도 잘했고 노래는 그보다 더 잘했지만, 아쉬웠다. 하긴 어찌 원본을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설령 원본의 가수보다 가창력이 더 뛰어나다 해도 원본에 스며들어 있는 오랜 세월의 집합적 감수성까지 재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불후의 명곡>에 앞서서 노래 잘하는 가수들의 극한 대결의 장이었던 <나는 가수다>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를 미션 곡으로 받은 절대 가창력의 소유자 윤민수는 온몸이 노래하는 듯 이 애절한 노래를 극한의 절창으로 불렀는데, 뒤로 갈수록 그의 놀라운 성대가 두드러지면서, 원곡의 절실함이 오히려 반감되었다. 노래를 못 부른 게 아니라, 원본에 서려 있는 미묘한 감수성이 강렬한 합주와 뛰어난 가창력에 묻혀버린 것이다.

예외는 있다.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있다. 1953년 대구 유니버설레코드사를 통해 가수 백설희가 발표한 노래다. 손로원 작사·박시춘 작곡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이렇게 시작하여 ‘봄날은 간다’고, 좋은 시절은 금세 지나간다고 일러주는 노래다.

이 노래를 수많은 가수들이 부르고 또 불렀는데, 나는 2009년 4월, EBS의 격조 있는 음악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에서 이 노래를 부른 주현미를 각별히 기억한다. 살랑살랑 흥겨운 트로트 가수의 대명사인 주현미는 기타리스트 김광석의 반주에 맞춰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주현미는 좋은 시절은 금세 지나간다고, 간절한 인연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고, 지금 피어난 꽃은 금세 차가운 아스팔트에 이지러진다고, 사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렇게 슬프게 불렀다. 가창력도 성대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정녕 봄날이 떠나가듯이 불렀다. 그래서 다시 듣는다. 봄꽃이 막 피어나려는 때에 그 꽃들이 금세 시들어버릴 수도 있음을 알기에, 다시 주현미의 노래로 ‘봄날은 간다’를 듣는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