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달관세대’가 아니라 ‘절망세대’다

조선일보 ‘달관세대’ 시리즈에 청년들 “달관과 체념은 다르다” 불만

“젊은 세대의 비참한 현실을 짚어준 것만큼은 높이 평가할 수 있으나, 실천적 대안이 고작 비정규직 철폐와 사회안전망 확보라는 기존 진보좌파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조선일보>는 ‘낡은 386은 가라. 20~30대 실크세대가 나간다’는 기획을 연재했다. 당시 변희재 실크로드 CEO 포럼 회장은 ‘88만원 세대’ 담론을 위와 같이 비판했다. 88만원은 대학 졸업 후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20대의 평균 임금소득을 의미한다.

비정규직으로 일해도 행복하다고?
변 회장은 ‘88만원 세대론’은 ‘앞으로’를 제시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비전은 “고작 비정규직 철폐나 사회안전망 확보”가 아니라 ‘창업’이었다. ‘청년 창업의 붐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실크로드 CEO 포럼이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실크세대’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70년대 이하 생들로 386세대들과 달리 인터넷과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어나가는 젊은 세대를 말한다.”

‘88만원 세대론’은 10대가 ‘88만원 세대’보다 어려움에 처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에 대해 변 전 회장은 10대들은 훨씬 좋은 조건에서 활동할 수 있을 거라며 이를 반박했다. “10대들이 한창 활동할 시기쯤에는 낡은 386들도 없을 것이고, 포털은 해체될 것이고, 남북은 통일되어 유라시아 대륙으로 끝없이 도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서울 노량진의 한 학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수험생들. | 김문석 기자

그 후로 6년이 지났다. <조선일보>가 내세웠던 ‘실크세대’는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에 등장한 건 ‘달관세대’다. ‘달관세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한국에 적용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달관세대’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달관세대’는 안분지족하는 법을 깨달은 세대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1980년대 중후반~90년대 태어난 10대 후반~20대 중반의 세대로, 욕망 없는 세대인 이들은 비록 경기침체로 정규직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중저가 옷을 입고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행복을 느끼는 세대다.” 6년 전, ‘인터넷과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어나가는’ 20~30대와 ‘유라시아 대륙으로 끝없이 도전해나갈’ 좋은 기회를 가질 것이라 예견됐던 10대들은 6년 후, 중저가 옷을 입고 비정규직으로 일해도 행복을 느끼는 ‘달관세대’로 돌변했다.

청년세대가 처한 경제위기에 대한 <조선일보>의 6년 전 처방이 ‘자기계발’이었다면, 6년 후인 오늘날의 처방은 ‘안분지족’의 ‘힐링’이 됐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박권일 칼럼니스트는 “<조선일보>의 ‘달관세대’ 기획은 자기계발시대가 끝나간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달관세대’는 힐링 담론의 변용이다”라고 말했다. ‘자기계발’과 ‘힐링’은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인다. 하지만 둘 다 사회구조적인 모순에는 눈을 감고 해법을 개인에게서 찾는다는 데서 거울쌍이다. ‘실크세대’가 “고작 비정규직 철폐나 사회안전망 확보” 같은 해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 않듯 ‘달관세대’ 기획도 사회구조적인 해법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88만원 세대’ 때보다 상황 나빠져
<조선일보>의 달관세대 시리즈를 접한 청년세대들은 사회구조가 낳은 청년층의 경제위기의 해법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에 대해 가장 불편해했다. 누구보다 구조적인 모순을 생활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는 청년층에게 ‘개인’에게 해법을 돌리는 ‘달관세대론’은 설득력이 없었다. 김서연씨(24)는 “우리는 구조맹이 아니다. 오히려 구조를 너무 잘 안다”고 말했다. 기업 채용규모는 갈수록 줄었다. 그래도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형편이 나았지만, 지방에서 학교를 졸업한 청년층은 월 100만원의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었다. 김정은씨(30)는 “한 달 100만원, 비정규직으로 생계는 꾸려갈 수 있다 해도, 자칫 조금만 삐끗해도 최하층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 청년들이 몰려 있다. 기사는 그런 사회적 구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고 말했다. 임경지씨(27)는 “기사는 적은 임금을 받으니까 많은 욕망들을 거세하고 사는 게 마치 합리적 라이프스타일인 것처럼 포장해 놨더라. 구조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결국 홀로 남겨진 개인에게 책임을 돌려 불편했다”고 말했다. 오수경씨(37)는 “청년실업, 학자금대출 등 빚쟁이 청년들을 양산하는 사회구조 문제를 그저 개인의 만족과 적응으로 돌려버리는 기사였다. 결국 기사가 현실에 조용히 적응하고 욕망과 꿈의 크기를 줄여서 자족하는 세대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년세대의 문제는 개인이 ‘자기계발’이나 ‘달관’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구조적 문제다. 무엇보다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최근 들어 20~30대의 경제적인 형편이 더 힘들어진다는 통계가 쏟아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3월 4일, 통계청은 가계동향 조사를 발표했다.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소득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 가구주 가계의 소득증가율은 0%대였다. 반면 50대는 7%대, 60세 이상은 4%대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홍 소장은 “20~30대의 상대소득은 떨어진다. 그런데 부채는 늘었다. 지금 40~50대 가구의 부채는 안 늘었는데, 20~30대 부채 비율이 10% 늘었다. 이런 지표들은 경기침체의 직격탄이 20~30대에게 집중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통계는 세대 간 경제력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권일 칼럼니스트는 과도하게 세대론으로 환원시켜서는 안 되지만, 세대 간 계급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2007년에 ‘88만원 세대’를 처음 거론했을 때보다 상황이 훨씬 나빠졌다. 88만원 세대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는 이러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도 했지만,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나면서 상황은 나빠졌다.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며 한국의 기성세대들이 결정한 게 공기업 대졸 초임 임금을 삭감했던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진 책임은 기성세대에게 있는데 자신들의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젊은 세대 전체의 초임을 삭감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특정 세대의 미래를 깎아낸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졸업식을 마친 졸업생들이 채용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러한 각박한 현실에서 <조선일보>의 ‘달관세대’는 20~30대에게 ‘달관의 강요’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택광 교수는 “‘달관세대’는 중산층 자녀들에게 ‘욕심 내지 말고 이렇게 살아라’는 식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여정훈씨(30)는 “20~30대를 없어도 되는, 종속적인 세대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달관세대’라는 말은 ‘적게 줘도 되는 사람들’ ‘이 상태로 둬도 되는 사람들’이라는 말로 들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근로조건 개선이라든지 생활이 가능한 임금인상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해법은 없이 ‘달관’하라는 건 20~30대를 ‘사회의 주체가 될 일이 없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것 같다.” 김서연씨는 “달관이라는 말은 포장이다. 이건 청년 세대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선택지가 있어서 다른 대안을 선택한 게 아니다. 여기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많은데, 그런 기사에 ‘달관’이라는 표현을 쓰니 속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김정은씨는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을 미리 심어주려는 거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한 달에 100만원으로 잘 사니까,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도 상관이 없다는 프레임을 만들려는 것 같아 화가 났다”고 말했다.

‘달관’한 청년들이 왜 이민을 가려 하나
<조선일보>가 제시한 ‘달관’은 취업난을 겪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사회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감정은 개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관련된 것이면서, 집합적으로 구성되는 정교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조선일보>가 ‘달관세대’로 제시한 사례들은 욕심을 안 내도 어느 정도는 살 수 있는 자원이 그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은 체념과 냉소, 분노가 더 맞다. 분노는 어떤 도화선이 있거나 대상이 분명하면 터져나오겠지만, 지금은 은근하게 분노가 공유되고 있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청년세대가 <조선일보>가 제시한 ‘달관’이라는 감정에 반발하는 이유는 그것이 20~30세대 현 정서를 지배하는 주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서연씨는 “달관이 아니라 절망이다. 아무런 기대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내일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없고, 취업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을 안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어’라는 체념의 정서가 지배적이다”라고 말했다. 임경지씨는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전혀 행복하지 않다. 체념이 어떻게 곧 안분지족인가. 체념했을 때 사람들은 삶을 중단하기도 한다. 우리는 통장 잔고 보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이택준씨(30)는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이 달관할까? 받아들이기보다는 포기한다. 자살률은 올라갈 거고, 이민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달관과 체념은 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20대의 90%와 30대의 93.2%가 이민을 고려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최근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원인에 대해서 한국 사회의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구조와 점점 심해지는 소득불평등 구조, 국내의 열악한 노동환경 등을 거론했다. ‘달관’한 청년세대라면 ‘더 나은 삶’을 찾는 ‘이민’을 고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년세대의 문제를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구조의 차원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홍헌호 소장은 20~30대가 처한 구조적인 경제위기의 문제를 그대로 두면 결국 공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 불황에 전 국민이 힘들어지는 건 사실인데 특히 고용 없는 성장으로 가면서 20~30대가 상대적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다. 정부는 규제완화라는 뜬구름을 잡고 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같이 공멸할 수밖에 없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