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관저의 100시간-일본 원전사고 어떻게 대처했나](https://img.khan.co.kr/newsmaker/1117/20150310_80.jpg)
관저의 100시간
기무라 히데아키 지음·정문주 옮김 후마니타스·1만6000원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태평양을 접한 동일본 연안에서 규모 8.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 연결된 송전탑이 무너졌고 외부 전원이 끊어졌다. 쓰나미에 따른 침수로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멈췄고, 긴급 노심 냉각장치로 급수는 멎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여섯 기 중 세 기가 연속적으로 노심융용 상태에 빠졌다. 수증기가 폭발하면서 콘크리트 건물의 두꺼운 벽은 터져나갔다. 천문학적 수치의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대량 확산되었고, 4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핵연료봉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사고대책통합본부가 세워진 15일 저녁까지, 100시간 동안 국가 최고사령부인 총리 관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책은 ‘사고는 왜 발생했는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대화가 오갔나’ ‘그때 잘못된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과 감당해야 할 책임들을 분리시킨다.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가장 중요한 책임자인 도쿄전력은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철수하는 데 급급했다. 긴급한 상황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원자력안전보안원, 문부과학성,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의 원자력 관련 관료조직은 피난경로 예측시스템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전문가집단은 원자로 폭발은 없다고 장담하다가 이에 대비하지 못한 채 폭발을 지켜보게 만들었다. 일본의 원전사고는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의 경험이 자연재해에 기인했다면 세월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재였다. 또한 일본은 분 단위로 작성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일지의 기록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나 세월호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시간을 다룬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은 객관적 기록을 통해 원전사고에 대한 통찰이 가능했다. 하지만 객관적인 기록을 통해 사건을 직시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