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상도의’ 좀 지킵시다

온갖 물건을 파는 시장 한가운데도 아닌데 요즘 방송가에서는 ‘상도의’ 문제로 시끌벅적합니다. 상도의는 상업활동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송에서도 상도의는 존재합니다.

딱히 누구도 그 규정을 정해놓지 않았지만 방송의 주체들이 서로 지키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한 여러 일들을 말합니다.

손호준

SBS와 tvN은 배우 손호준(31)의 출연문제 때문에 당황해야 했습니다. 손호준은 당초 SBS 예능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 일찌감치 출연하기로 결정하고 태평양 한가운데의 도서국가 팔라우까지 다녀왔습니다. 편집과정도 끝나 오는 30일 방송을 앞두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케이블채널 tvN의 <삼시세끼-어촌편>에도 손호준이 출연하게 된 겁니다. 이는 원래 캐스팅됐던 배우 장근석의 탈세 논란이 도화선이 됐습니다.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빠지기로 한 장근석을 대신해 예전 <삼시세끼>에서 체험일꾼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가 합류하기로 한 겁니다.

SBS 수목극 <하이드 지킬, 나>

손호준은 이미 목포 인근 만재도에서 촬영도 했습니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은 각각 금요일 오후 10시에 방송되는 경쟁 프로그램이었습니다. SBS 측은 당황스러운 반응을 내비쳤고, <삼시세끼> 측은 나영석 PD가 나서 “장근석이 갑자기 빠지는 등 경황이 없어 손호준을 섭외했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SBS는 MBC와도 껄끄럽습니다. 시작은 SBS 수목극 <하이드 지킬, 나>의 원작 웹툰 <지킬박사는 하이드씨> 이충호 작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글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다중인격장애를 겪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는 <지킬박사는 하이드씨>가 시작”이라며 “사회현상으로 포장하지 마라. 그저 아이디어 도둑질일 뿐이다”라고 분개했습니다.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 10시에 맞붙는 MBC의 경쟁드라마 <킬미 힐미>를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MBC 수목극 <킬미 힐미>

거기다가 MBC <무한도전>의 특집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도 프로그램에 실제 출연했던 출연자가 ‘토요일 토요일은 가요다’라는 상호의 가게를 열 계획을 세우다가 MBC의 법적대응 의사에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인터넷이 활발하게 발달한 요즘은 예전보다 프로그램을 검증하는 잣대들이 정교해졌습니다. 누리꾼이 프로그램을 검증하는 시선은 더욱 촘촘해졌고, 조금만 유사한 소재나 진행이 나오면 바로 SNS를 통해 이 사실이 널리 퍼집니다.

MBC <무한도전-토토가 특집>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겹치기’ ‘유사소재’ ‘유사상표’ 등의 문제가 터져나온 것은 이례적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과거에 어떤 사회가 가져왔던 가치가 점점 흐려진다는 걸 의미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매체가 많아지고 그만큼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예전 연출자들 같으면 철석같이 지켰던 가치가 요즘에는 희석되는 사례를 꽤 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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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만드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내 프로그램에 대한 자존심 문제겠지만 시청자로 시선을 돌리면 상도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바로 시청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방송은 시청자를 향해야 합니다. 누가 귀한 시간을 내 TV를 보면서 같은 출연자가 같은 시간대에 양쪽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보고, 비슷한 드라마나 짜깁기 드라마를 보고 싶겠습니까. TV가 시청자에게 가져야 하는 ‘염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습니다.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