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언브로큰-극한상황을 견디게해 준 낙관론

때로 현실이 더 소설 같은 때가 있다. 영화 <언브로큰>은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였던 한 장거리 달리기 유망주가 전쟁포로가 돼 견뎌야 했던 850일간의 이야기다. <툼레이더>의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가 메가폰을 잡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자행한 혹독한 고문을 담고 있어 일본 우익들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원작은 로라 힐렌브랜드가 쓴 동명의 소설이다. 미국 육상선수 루이 잠페리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이탈리아 이민자로 반항기를 겪던 루이는 육상에 입문하면서 재능을 발휘한다. 최연소 국가대표로 베를린 올림픽에 참여한 그의 다음 꿈은 도쿄 올림픽 출전.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올림픽은 취소되고 루이는 공군에 입대한다. 루이가 탄 전투기는 엔진 고장으로 바다에 추락하고, 루이는 태평양 망망대해에서 표류한다. 47일 만에 사람을 만나지만 그를 구한 것은 일본군. 더 힘든 포로생활이 시작된다. 도쿄의 포로수용소에선 매순간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청소년기까지 루이는 세상에 냉소적이었다.

술병을 우유병처럼 만든 뒤 술을 마시고, 미래에 대한 열정은 없다. 툭하면 싸움질이다. 이런 루이가 마음을 잡은 것은 형의 끈질긴 설득 때문이다. 형은 루이를 붙잡고 말한다. “이런 식이라면 넌 노숙자를 벗어날 수 없어.” 그러면서 말한다. “견딜 수 있으면 해낼 수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루이는 상대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비로소 삶에 자신감을 찾는다. 그리고는 비관론자에서 낙관론자로 변한다. 47일간 망망대해에 내던져졌을 때도, 일본군의 포로가 됐을 때도 루이를 견디게 하는 것은 “나는 살 수 있다”는 낙관론이다. 때때로 극한상황에 내몰리지만 형이 했던 또 다른 말 “순간의 고통을 견딜 수 있으면, 영원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를 떠올린다.

경제학을 지배한 것은 낙관론자들이었다. <인구론>을 쓴 토머스 맬서스와 같은 비관론자는 예외적이었다. 에릭 바인하커는 저서 <부의 기원>에서 극단적으로 낙천적인 사람들을 ‘팡글로시안’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주도한 경제를 ‘팡글로시안 경제’라고 이름 붙였다. 팡글로시안이란 볼테르의 <캉디드>에 나오는 팡글로스 박사에서 따왔다. <캉디드>는 낙천적 세계관을 조롱하고 사회적 부정과 불합리를 고발하는 풍자소설이다. 대표적인 팡글로시안은 아담 스미스다. 국가 등 외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시장은 스스로 알아서 작동하면서 균형가격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 동력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찾았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손’이다. ‘파레토 최적’을 만든 경제학자 파레토도 빼놓을 수 없는 팡글로시안이다. 그는 시장에서 거래란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기 전까지 계속된다고 봤다. 거래가 중단되는 때는 누군가 손해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정부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자유주의자들은 팡글로시안으로 분류된다. 자유주의자들은 감세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킬 것을 주문하고, 정부 규제를 줄일 것을 요구한다. 밀턴 프리드먼은 “연필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흑연을 캐고, 누군가는 나무를 기르고, 누군가는 연필을 조립하고, 누군가는 이를 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없었다”는 말로 신자유주의를 지지했다.

영화 속 경제

하지만 긍정적으로 본다고 경제가 항상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호황은 영원하다”고 외쳤던 1929년, 그 해 10월 대공황이 불어닥쳤다. “금융에서 이제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태평양에서 표류하던 루이는 “우리는 살 수 있다”고 동료들에게 외치지만 결국 한 명은 죽음을 맞이한다. 죽기살기로 괴롭히는 일본군 장교 와타나베의 악행을 견디다 못한 루이는 절망에 빠지지만 이때 연합군이 승리해 극적으로 풀려난다. ‘낙천적 사고’도 때론 배신한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