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다중인격 드라마’ 출현 배경은

혹시 ‘해리성 장애’(Dissociative Disorders)란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조금 더 단어를 쉽게 풀이하면 ‘다중인격장애’를 말합니다. 분명 몸은 하나인데 전혀 다른 인격체가 살고 있는 거죠. 굉장히 극적일 것 같지 않나요? 분명 한 사람인데 둘 또는 그 이상의 인격이 서로가 하는 일을 모른다면? 심지어 두 인격이 서로를 적대시하고 서로가 하는 일을 방해한다면? 또 거기다 다른 등장인물이 그 사람의 여러 인격을 동시에 사랑하기 시작한다면? 최근 드라마 작가들은 이러한 상황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중인격을 다루는 무려 세 편의 드라마가 비슷한 시기에 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MBC <킬미 힐미> | MBC 제공

지난 7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MBC 수목극 <킬미 힐미>(극본 진수완, 연출 김진만 외)는 일곱 가지 인격을 가진 재벌 3세 주인공 차도현(지성)과 비밀리에 그의 정신과 주치의가 된 오리진(황정음)의 이야기입니다.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시청률 40%를 넘긴 진수완 작가의 새 드라마입니다. 오는 21일에는 SBS 수목극으로 <하이드 지킬, 나>(극본 김지운, 연출 조영광)가 첫 방송됩니다. 배우 현빈의 드라마 복귀작인 이 작품에도 이중인격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현빈이 연기하는 구서진 역시 극중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호텔과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재벌가의 외아들입니다. 냉철한 성격인 그에게는 따뜻한 성품의 인격인 ‘로빈’이 존재합니다. 그가 테마파크 전속 서커스단 단장인 장하나(한지민)와 엮어가는 이야깁니다. 거기다 배우 김수현이 물망에 올랐던 드라마 <닥터 프랑켄슈타인>도 있습니다. 이 드라마 역시 이중인격을 가진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드라마가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들은 한정된 소재를 갖고 끊임없이 설정을 변주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재벌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단순한 로맨스였던 줄거리가 재벌이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다른 인격이 되는 반전을 주기도 하고, 재벌인 사실을 숨기고 이중생활을 하는 설정을 들여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드라마들이 이제 한 사람 안에 여러 인격을 집어넣어 극적 상황을 만들려 애쓰고 있습니다.

SBS <하이드 지킬, 나> | SBS 제공

‘다중인격 드라마’의 번성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물론 자신 안에서의 소통에도 실패하는 인간 군상이 많은 서글픈 현실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은 점점 서로 진심을 갖고 대하기 힘들어지고 있고, 심지어는 ‘소시오 패스’ ‘사이코 패스’라는 이름 아래 겉으로 보이는 인격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늘었습니다. 갈수록 파편화된 개인을 다루다 못해 이제는 한 사람의 인격까지도 파편화시키는 이런 드라마의 등장은 단순한 극적 재미를 떠나 인간성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해가는 지금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클릭TV

이 드라마들은 모두 다중인격의 남자 주인공들이 여주인공과의 사랑을 통해 다중인격이 야기한 갈등이나 문제를 극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중대한 인격 장애인 ‘다중인격’이 그저 주인공의 다채로운 매력의 일부로 그려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들이 하나같이 다 재벌가 남자들이라는 점도 이런 의심의 이유가 됩니다. ‘다중인격’ 설정은 평범한 재벌가의 연애담은 싫어서 넣은 설정일까요. 아니면 진지하게 인간성을 고찰해보려고 넣었을까요. 재밌게 즐기기에 앞서 꼭 유심히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