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암울한 세상의 유머 감각

다잉 라이트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지음·박산호 옮김 RHK·1만4000원

<다잉 라이트>의 무대인 애버딘이 어디 있는지 찾아봤다.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 런던에서 리버풀과 에딘버러를 지나 한참 위로 올라가니 스코틀랜드의 세 번째 큰 도시라는 애버딘이 있었다. 부검찰관 레이철은 애버딘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살해당한다고 말한다. 통계가 정말인지 확인해주지는 않지만 <다잉 라이트>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숫자만 보면 무지막지하다.

사람들이 불법 점유한 빈 건물의 출입구를 막아놓고 불을 지르는 방화범이 있고, 홍등가에서 창녀들의 시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버려진 여행 가방 안에서는 래브라도견의 시체가 나온다. 스튜어트 맥브라이드의 소설은 어둡고 불쾌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약만이 아니라 도시개발에 끼어들어 이익을 챙기려는 폭력조직이 있고, 사악한 욕망을 다스리지 않고 살인을 하는 연쇄 살인범도 있고, 전형적인 범죄의 동기인 돈과 질투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보통 사람들도 있다. <다잉 라이트>는 에버딘 그램피언 경찰청의 로건 맥레이 경사를 내세운 두 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 <콜드 그래닛>에서는 잔인한 유아 살해사건을 그렸다. 화강암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애버딘에는 줄창 비가 내리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추적하는 풍경은 살벌했다. 그야말로 하드보일드의 현장이다. 로건은 연쇄 살인범을 체포하다가 큰 부상을 당한 후 1년 만에 복귀한 상태였다. 사람들이 부르는 ‘라자루스’라는 별명을 로건은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는 부활한 것이 아니고, 그런 끔찍한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잉 라이트>의 사건들은, 애버딘은 참 암울하다. 그런데 <다잉 라이트>를 보고 있으면 연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영국 영화에서 익히 봤던 ‘영국식 유머’. 극악한 상황에서도 뒤틀린 유머를 아끼지 않는 유희정신이 맥브라이드의 소설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로건 맥레이부터가 하드보일드의 강인하고 냉정한, 목표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고독한 늑대 타입이 아니다. 범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병적인 상상력’을 가진 뛰어난 형사이지만 자신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상사들 틈에서 소심하게 낙담하고, 반항하다가도 바로 수그러드는 직장인형 형사다. 좋아하는 여인 앞에서는 쩔쩔매며 기분을 맞춰주려 애쓴다. 터프가이는 애초에 꿈도 꾸지 못한다.

북리뷰

로건이 주도한 작전에서 경찰이 총을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다잉 라이트>는 시작된다. 로건은 해직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꼴통들만 모인 스틸 경위의 팀에 배속되어 연쇄 살인사건을 맡는다. 경찰 조직 내의 온갖 협잡과 이권 다툼을 보여주는 ‘경찰 소설’의 면모를 보여주는 동시에 <다잉 라이트>의 중첩된 사건들은 추악한 현실을 차가운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로건의 내면과 주변 상황을 다룰 때에는 유머감각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세상이 암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자세를 가다듬는 것도 필요하지만 당장 세상을 살아갈 때는 웃음과 여유가 필요하니까. 쉴 때만이라도 어깨에서 힘을 빼고 늘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스튜어트 맥브라이드의 소설은 더욱 현실적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