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떠도는 반이슬람 유령

테러 공포가 이슬람 혐오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무슬림 유입으로 유럽 문화가 훼손되고 있다”는 반무슬림 감정까지, 복합적으로 뒤얽힌 정서가 최근 유럽을 지배하고 있다.

“반이슬람 집회를 주도하는 이들의 마음속은 편견과 냉담, 증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여는 집회에 참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올해 신년사에서 최근 독일에서 번지고 있는 반(反)이슬람 집회에 대해 직접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2014년 10월부터 ‘PEGIDA(페기다)’라는 단체가 매주 월요일마다 반이슬람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보통 폭력적이고 과격한 양상을 보이는 극우파와는 겉보기에 상당히 다르다. 스스로 네오나치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선언했으며, 시위에 폭력적인 구호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무슬림 이민자들이 지나치게 유입돼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교 문화와 전통이 퇴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몇 달 전 첫 시위가 열렸을 때 수백명에 불과했던 참가자들은 매주 크게 늘어나, 지난 12월에는 1만7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최근 독일에서 일어난 반이슬람 시위 중 가장 큰 규모다. 이들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이끌었던 동독 민주화운동의 구호인 “우리가 국민이다”를 차용하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페기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피부색이나 종교가 다른 사람들은 우리 중 일부가 아니라는 뜻으로 이 구호가 사용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신년 연설 녹화를 진행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반이슬람 집회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 베를린｜EPA연합뉴스

이슬람 혐오 감정, 일반 시민들도 공유
유럽 일부 극우파의 반이슬람 정서는 유럽의 해묵은 문제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아르네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77명을 살해하는 테러를 저지른 뒤로 유럽의 반이슬람 정서가 위험수위라는 지적이 쏟아지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는 유럽에 반이슬람 정서가 더욱 물결쳤다. 그 중심에는 ‘공포감’이 있었다. 이라크와 시리아를 장악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서방국 인질들을 잇따라 참수한 사건이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를 부추겼다.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벌인 공격 사건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면서 공포심은 증폭됐다. 지난 5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는 시리아에서 무장 반군세력에 합류했다가 돌아온 한 프랑스인이 총기를 난사해 3명을 숨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8월에는 캐나다, 11월에는 호주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오타와 의사당 공격 사건, 시드니 카페 인질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기도 했다.

테러 공포가 이슬람 혐오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이민자들이 우리가 누려야 할 혜택을 빼앗아간다”는 전통적인 반이민 주장은 유럽에 경기침체가 수년째 계속되면서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변해갔다. 뿐만 아니라 “무슬림 유입으로 유럽 문화가 훼손되고 있다”는 반무슬림 감정까지 복합적으로 뒤얽힌 정서가 최근 유럽을 지배하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증오는 이제 더 이상 극우파의 전유물도 아니다. 독일에서 발호한 페기다는 ‘서방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을 뜻하는 ‘Patriotische Europaer gegen die Islamisierung des Abendlandes’의 약자다. 이들은 이슬람이나 이민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만 이슬람 문화가 서방에 침범해 서유럽의 전통적인 기독교 문화가 퇴색되고 있는 현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런 움직임은 독일이 유럽 주요국 중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유입되는 나라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지난해 발표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독일 영주권을 얻은 영구 이민자는 40만명으로 OECD 회원국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독일 무슬림 인구는 약 430만명으로 전체 독일 인구의 약 5%에 달한다. 특히 홀로코스트와 나치라는 얼룩진 과거 때문에 독일의 난민 신청 규칙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다. 2014년 한 해 동안 독일에 도착한 난민 신청자는 20만명에 달했다.

페기다의 시위가 확산되자 메르켈 총리를 포함한 독일 정치권은 “독일에 무슬림과 소수자에 대한 증오가 설 자리는 없다”고 경고했다. 독일 기독교 지도자들도 신년사를 통해 일제히 이민자를 배격하는 독일 사회 분위기를 비판했다. 하지만 독일 시민들 중 상당수가 ‘독일의 이슬람화’라는 페기다의 우려에 동의하고 공감한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포르사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시민 중 29%는 “이슬람이 독일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페기다의 반이슬람 시위가 정당하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응답자 중 13%는 “반이슬람 집회에 참석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 독일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도 페기다 지지를 선언했다. 독일 기독민주당(CDU)의 자매 정당인 기독사회당(CSU)은 최근 “독일에서 영구히 정착하고자 하는 이민자들은 가정에서도 독일어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가 전방위적으로 공격을 받기도 했다. 심상찮은 반이슬람 분위기가 독일 극우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유럽 전역에서 증오 범죄·발언 빈발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는 유럽 곳곳에서도 극우정당이 활개치고, 이슬람에 대한 증오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연말연시 일주일 동안 세 차례나 모스크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스웨덴에서는 최근 이민자 유입을 반대하는 극우정당의 방해 때문에 의회가 해산되고 정권이 바뀔 뻔한 일도 있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6월 이슬람 복장인 아바야를 입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여성이 산책하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증오 발언도 주기적으로 문제가 된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말 한 유명 TV 뉴스 진행자가 언론 인터뷰에서 “프랑스에 살고 있는 무슬림 500만명을 내쫓지 않으면 프랑스는 내전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가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한편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는 사건도 계속 일어났다. 프랑스 중부 도시들인 투르와 디종, 낭트에서는 이슬람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 공격 3건이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사흘 동안 잇따라 벌어졌다. 경찰서에서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거나 차량으로 사람들에게 돌진하는 공격을 자행한 세 사람은 각자 공격 직전 “알라후 아르바크”(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경찰은 세 사건에 상호연관성이 없다고 결론내렸고, 투르 사건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두 건은 정신이상자의 소행이며 테러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IS 공습에 적극 참여한 프랑스가 ‘외로운 늑대’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지면서 크리스마스와 연말 동안 프랑스 전역은 ‘테러 공포’에 떨었다. 수천명의 군인들이 테러 예방을 위해 도심에 투입돼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남지원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omni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