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타임 패러독스-거창한 주제, 산만한 진행

조이앤컨텐츠그룹

제목 타임 패러독스 (Predestination)

제작연도 2014년

제작국 호주

러닝타임 97분

장르 SF, 미스터리

감독 마이클 스피어리그, 피터 스피어리그

출연 에단 호크, 노아 테일러, 사라 스눅, 매들린 웨스트

개봉 2015년 1월 8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한 감독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편의 장편을 기다려야 한다. 그 전에는 경험부족으로 미숙한 결과를 낼 수도 있고, 우연한 실수로 걸작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세 편 이상의 작품을 완성할 때 즈음이면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해지고, 기교적으로도 능숙해진다. 그리고 그 세 편의 작품을 관통해 유지되는 스타일이라든지, 영상문법, 주제의식 등의 공통분모는 감독이 지향하는 가치관과 관심을 입증하는 뚜렷한 증거들이 된다.

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호주 출신 형제감독 스피어리그 형제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단 한 번의 테러로 뉴욕을 초토화시키고 1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만든 희대의 범죄자 피즐 폭파범. 그를 잡기 위해 시간을 초월해 수사활동을 펼치는 ‘범죄예방본부’는 뛰어난 요원인 템포럴(에단 호크 분)을 투입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검거는 실패로 돌아간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템포럴 요원은 반복되는 죽음의 문턱에서 기사회생해가며 조금씩 피즐 폭파범의 정체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인생의 모든 것을 빼앗긴 여자 ‘제인’(사라 스눅 분)과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의문의 남자 ‘존’의 관계가 치밀하게 얽혀든다.

2003년 노골적으로 B급을 표방한 헐렁한 좀비영화 <언데드>로 데뷔한 호주 출생 스피어리그 형제는 나이에 비해 그리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창작자들은 아니다. 2009년에야 두 번째 작품으로 대작 SF <데이브레이커스>를 내놓는다. 전작에 비해 훨씬 화려하고 만듦새까지 깔끔하게 다듬어진 이 작품은 흡혈귀란 소재를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모순 속에 투영해 흥미로운 디스토피아적 미래관을 제시한다. 이후 세 번째 장편 <타임 패러독스>를 내놓기까지 다시 5년이 걸렸는데, 어째 이번에는 여러모로 퇴보한 느낌이 다분하다.

SF소설계의 대부로 통하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고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짧은 단편을 확장한 만큼 웅장한 볼거리에 방점을 두고 있는 작품은 아니다. 대신 한 인물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빗대어 ‘삶’이라는 철학적이고 거시적인 주제를 통찰하고 대유한다. 하지만 시도에 비해 선택한 방식은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산만하게 꼬여 있되 배분에 실패한 시간과 인물들의 관계는 영화의 주제와 상통하는 감정적 흐름을 공유하는 데 되레 방해가 되고, 애잔한 감정의 운명적 모순을 촉발케 하는 시간여행의 통념적 가설들 역시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다 흐지부지 흩어진다.

홍보에 사용되는 카피나 리뷰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 작품도 꽤나 현란하고 화려한 문구들이 눈에 띈다. 특히 반전에 관한 언급들은 더욱 극성스러운데, 유감스럽게도 이 작품은 그리 잘빠진 반전 영화가 아니다. 너무나 친절하고 복고적인 전개방식은 시작부터 결말을 들켜버린다. 중반 이후를 지나면서 마치 양파 껍질 벗겨지듯 나열되는 작은 반전들의 비밀도 하나같이 예상했던 대로 쪼개져나가 씁쓸한 뒷맛만을 남긴다.

터치스크린

하지만 이들 과장된 리뷰들 중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들도 있다. 바로 호주 출신 신예 여배우 사라 스눅에 대한 찬사가 그것이다. 2009년 데뷔 이후 TV 드라마와 다수의 조연을 거쳐 온 그녀는 사실상 홀로 이 작품을 이끌어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변신과 밀도 있는 연기로 존재감을 드높이고 있다. 그녀의 발견은 <타임 패러독스>가 제공하는 유일한 가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