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오디션 프로그램 ‘유용론’

언제부턴가 매년 11월 말은 방송담당 기자들에게는 바쁜 시기가 됐습니다. 대형 오디션 프로그램이 하나는 끝을 맺고, 또 하나는 시작하기 때문인데요. 올해도 그랬습니다. 케이블채널 엠넷의 <슈퍼스타K 시즌6>(‘슈스케6’)은 우승자를 내며 마무리됐고, SBS의 <서바이벌 오디션 K팝 스타 시즌4>(‘K팝스타4’)는 화제 속에 막을 올렸습니다.

두 프로그램은 올해 큰 분수령에 있었습니다. 특히 <슈스케6>의 책임감은 실로 막중했습니다. 2009년 시작된 프로그램은 매 시즌마다 스타를 배출하며 대한민국을 ‘오디션의 광풍(狂風)’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성적은 참혹했습니다. 시즌 결승전 시청률이 전성기 10분의 1 수준인 1%대로 줄었고, 결승전 문자투표 점수도 100만표를 넘긴 시즌이 대부분이었지만 다섯 번째 시즌은 겨우 13만표에 불과했습니다.

곽진원 | 엠넷제공

K팝스타4 역시 부담감이 큽니다. 앞의 두 시즌과는 달리 세 번째 시즌 우승자 버나드 박은 아직 데뷔 앨범이 안 나왔을 뿐더러 인지도도 앞선 두 시즌에 비해 떨어집니다. 참가자들의 기량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한순간에 엇갈리는 출연자들의 희비쌍곡선을 대단한 듯 편집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특유의 모습에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그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MBC는 당시 사장의 의지로 <위대한 탄생>을 만들었지만 결국 좌초됐습니다. ‘오디션의 명가’ 엠넷마저도 <보이스 오브 코리아>의 방송을 올해 건너뛰기로 사실상 결정했습니다. 다시 많은 가수지망생들은 대형기획사 오디션으로, 일부는 지하공연장으로, 또 일부는 길거리로 흩어졌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가수 발굴시스템이 정교하고, 기획사의 훈련 체계가 잡힌 곳에서 꼭 방송으로 오디션을 해야 하나’라는 물음이 있다면 이번 <슈스케6> 우승자인 곽진언(23)이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수학경시대회에서 21점을 맞던 초등학교 때 이미 음악으로 진로를 정하고 홈스쿨링을 통해 세상을 배웠습니다. 다른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학업에 목을 맬 때, 그는 혼자서 작곡을 배웠고 <슈스케6> 출전 전에 이미 80여곡을 만들어 놓은 싱어송라이터가 됐습니다.

곽진원 | 엠넷제공

그가 지난 21일 결승에서 부른 ‘자랑’이라는 노래는 순전히 그의 목소리와 기타소리로만 채워진 곡입니다. 그는 담백한 저음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나눠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 그대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 거예요”라고 부릅니다. 한때 영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조어나 은어에 자리를 뺏겼던 시(詩)의 언어가 다시 대중가요의 가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매번 독특한 성장과정을 통해 그만의 음악세계를 갖춘 뮤지션이 오디션을 통해 나오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곽진언의 등장에 대중들은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고 새로운 세계를 보고, 이는 가요계의 지형을 서서히 바꿔갑니다.

클릭TV

예전처럼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를 통해 새로운 가수가 나오기 힘들지 모릅니다. 훨씬 독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이미 창구는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곽진언 같은 ‘가객’(歌客)이 또 어디엔가는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직 눈을 뗄 수 없나 봅니다.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