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우편열차는 왜 박물관으로 갔을까

우리나라 근대 우편제도는 1884년에 도입되었다. 당시 우편물 운송은 우편수레나 말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요 수단은 역시 체전부(遞傳夫·오늘날의 집배원)의 튼튼한 두 다리였다. 통신방법 중 가장 오래된 인편은 편리하지만 속도, 주기, 안전성 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목포에서 부친 우편을 함흥에서 받아보려면 한 달 정도는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러나 인구가 늘고 식자율이 높아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우편수요가 폭증했고, 이를 소화해낼 새로운 운송수단이 필요했다.

1904년 11월 1일, 일제의 조선침략 교두보인 경부철도가 부설되면서 우편물의 철도운송이 시작되었다. 철도는 이전의 우편물 운송수단과는 차원이 달랐다. 배달 속도가 빨라지고 들쑥날쑥하던 운송주기가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철도망이 늘어날수록 우편서비스 품질도 나아졌다. 1905년 3월부터 서울~부산 간 우편물을 직송하면서 11일 걸리던 운송시간이 1일 이내로 단축됐다. 1908년 초엔 경부선에 직통 야간열차가 운행돼 속달우편물 발송도 가능해졌다.

충청남도 천안시에 위치한 우정박물관 우편테마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17934호 우편열차. | 우정사업본부 제공

1920년대 말이 되며 우편물 철도운송 횟수가 더욱 늘어난다. 경부 간에 주간 1회·야간 2회씩 왕복, 경성~신의주, 경성~청진 간은 주야로 2회 왕복운행할 만큼 빈번해졌다. 당시 신문은 철도로 운송되는 우편물량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한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부산으로 들어오는 소포행낭이 하루 평균 2170개나 되고 서울에서 경의선으로 보내는 것이 967개, 경원선으로 나르는 것이 880개에 달한다.

1953년 광복절엔 경부선 두 편의 야간열차에 우편물 전용 화차를 연결해 배달 시간을 단축한다. 1973년 2월 24일엔 우리나라 우정 사상 처음으로 서울~부산 간 철도우편 전용열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우편 전용열차는 600개의 행낭을 실을 수 있는 적재실과 우편물 접수실, 휴게실 등 시설을 갖춘 2량의 열차였다. 매일 오전 6시20분과 7시에 용산역과 부산역을 각각 출발해 경부 간 51개 우체국과 우편물을 교환하고 통상우편물과 등기 소포우편물 등을 차내에서 직접 취급했다. 서울~목포 간 우편전용열차는 이듬해부터 운행되었다.

70년대 이전의 우편열차는 딱히 이렇다 할 시설이 없었다. 일제 강점기간엔 주로 3등 열차에, 1960년대 이후엔 통일호와 비둘기호에 편성되었다. 객차 형태는 반은 수화물이나 우편물을 싣고 나머지 반은 여객이 이용하거나, 수화물 칸과 우편 칸으로 반씩 나눈 것 등이 있었다. 우편열차엔 행낭을 점검하고 운반하는 우편승무원들이 탔다. 60년대 말 서울철도우체국 소속 우편승무원만 400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얼핏 보면 팔도를 유람하는 멋진 직업 같지만 박봉에 적자생활을 면하기 어려웠다. 행낭을 도둑맞거나 분실이라도 하는 날엔 얼마 안 되는 봉급을 날리기 일쑤였다. 찬바람 부는 11월부터 3월까지는 난방도 안 되는 차 안에서 밤새 추위와 싸워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우편열차는 102년간 달렸다. 기쁜 소식 궂은 소식 행낭에 가득 싣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국을 누볐다. 우리 근대사의 한복판을 쉼 없이 달렸다고 해야 맞겠다. 우편열차는 빠른 운송으로 근대 우편제도를 발전시킨 공신 중의 공신이다. 그런 우편열차시대의 종착역이 보이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다. 전국에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육로와 철도가 우편물 운송을 분담하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자 우편물 운송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서울 및 동서울우편집중국이 개국하고 대구·광주·대전 등 전국 주요 운송거점 6곳에 우편집중국이 추가로 세워졌다. 2000년 2월엔 대전운송교환센터가 문을 열고 1920년대부터 운영해 오던 철도우편운송국이 폐지되었다. 우편물 운송기반이 철도에서 육로로 완전히 넘어가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정사업본부는 “KTX가 철도운송의 주축이 된 상황에서 무궁화호를 이용한 1일 1회 철도운송으로는 지방우편물을 다음날 배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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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4일, 한 세기 넘게 전국을 달리던 우편열차가 마침내 멈췄다. 빠른 속도를 앞세워 우마차를 밀어낸 우편열차가 물류의 빠른 변화 속도에 치여 속절없이 박물관으로 밀려났다. 속도에 밀려나는 속도, 아이러니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