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불법파업만 있고 불법직장폐쇄는 없나

올 들어 직장폐쇄한 사업장 지난해보다 4배 가까이 급증… 사측, 느슨한 노동법 기준 악용 ‘공격적 폐쇄’ 버젓이

에스제이엠 사측의 직장폐쇄는 위법했다. 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그렇다. 하지만 에스제이엠의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위법적인 직장폐쇄에 대한 법적 제재가 흔치 않은 현실 때문이다. 합법적 쟁의권을 얻은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가면 회사는 이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합법적인 직장폐쇄 조치를 할 수 있다. 쟁의 중인 사업장의 직장폐쇄 조치는 올해 들어 지난해에 비해 4배 가까이 급증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위법적인 직장폐쇄가 만연해 있어 그만큼 합법적인 파업권이 침해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9월 1일 케이블방송업계 비정규직 노동자 한모씨(34)는 경고파업을 끝내고 현장복귀한다는 노조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일터로 출근했다. 민주노총 산하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씨앤앰 비정규직지부 소속인 한씨는 씨앤앰의 하청업체인 회사로 들어가려 했지만 회사쪽 직원들의 제지로 출입이 가로막혔다. 이유를 물어보니 ‘직장폐쇄’가 진행 중이며 강제로 들어오면 ‘무단침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노조가 현장복귀를 통보하면 응당 직장폐쇄의 효력이 없어진다는 것을 안 한씨와 동료 조합원들은 사측 직원에게 직장폐쇄가 풀려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돌아온 것은 “경찰을 부르겠다”는 대답이었다. 결국 인근 지구대 경찰이 출동하고 사측 직원들이 어딘가로 분주하게 문의하는 모습을 한 시간 넘게 지켜보고서야 한씨는 직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 지부 조합원들이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본사 앞에서 태광그룹 티브로드의 불법ㆍ불공정 행위를 규탄하는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13개 하청업체 한꺼번에 직장폐쇄한 곳도
정작 현장에 복귀하긴 했지만 한씨와 조합원들은 제대로 업무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아직 철수하지 않은 대체인력들이 담당업무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하청업체다 보니 전문적인 법률지식이 없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 걸핏하면 원청과 통화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원청 쪽과 통화해서 지시받는 것 아니냐고 물어도 잡아뗄 뿐이었다.” 한씨가 속한 씨앤앰지부에서만 13곳의 하청업체가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는 노조의 현장복귀 통보일인 9월 1일 이후 열흘을 넘긴 11일에 직장폐쇄를 푼 곳도 있었다. 이 업체가 직장폐쇄를 핑계로 10일간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위법이다.

같은 케이블업계 업체인 티브로드 역시 지난 6월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4일간의 경고파업 후 현장에 복귀했지만 복귀 후 3일 만에 직장폐쇄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 역시 위법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보장하는 사측의 직장폐쇄는 노조의 쟁의행위로 과도한 손해를 입게 될 때 회사를 보호하기 위한 수동적·방어적 수단으로 한정된다. ‘방어적’인 직장폐쇄만 합법이기 때문에 노조가 파업을 마치고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직장을 폐쇄해선 안 되는 것이다.

2012년 노조 파괴공작으로 악명을 떨친 창조컨설팅의 주요 전술 가운데 하나도 이와 같은 ‘공격적 직장폐쇄’였다. 용역 인력을 동원해 폭력을 휘두르며 노조의 쟁의행위를 위법하게 탄압한 창조컨설팅이 그해 국회의 용역 폭력 청문회 이후 사실상 분해되면서 직장폐쇄 건수도 줄어드는 듯했다. 지난해 직장폐쇄 건수는 2012년(10건)의 절반인 5건으로 총 직장폐쇄 일수도 2012년 574일에 비해 179일로 크게 줄어든 바 있다. 그러나 경영계의 이러한 움직임은 채 1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단행된 직장폐쇄 건수만 8건에 달했다. 총 직장폐쇄 일수도 7개월 동안에만 346일에 달해 지난해 1년 전체 일수의 두 배에 육박했다. 이와 같은 추세로 12개월이 지날 경우 용역 폭력이 극에 달한 2012년의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도 다분하다.

노동계는 직장폐쇄의 범위에 대해 느슨하게 제시하고 있는 현행 노동법을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법상의 노동3권을 취지에 맞게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사측의 무분별한 직장폐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직장폐쇄는 예외적인 경우에 인정되는 제도로 쟁의에 대한 대항행위에 불과하다”며 “사측이 직장폐쇄 기간 중 임금을 지급할 의무를 면제해주는 효과에만 국한시키고, 노조를 사업장에서 배제시키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의 취지”라고 주장했다.

경영계 역시 직장폐쇄가 노동조합의 파업에 맞서 기업이 방어적으로만 써야 하는 수단이라는 원칙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가 더욱 만연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해 법적으로 보장된 직장폐쇄를 단행하는 것이 위법일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경영자총협회 노사대책본부는 “직장폐쇄는 노조의 불법적인 사업장 점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이라며 “일부 판례에서는 노조가 근로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업무복귀 의사의 진정성이 없는 경우에는 직장폐쇄 유지의 정당성을 인정한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위법판결 때만 폐쇄기간 임금 지급
분규현장의 조합원들은 직장폐쇄 기간 중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사측이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에스제이엠의 예처럼 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릴 경우에만 해당 기간의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을 뿐, 대부분의 경우 경제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노조와 조합원들이 임금 지급을 미끼로 벌어지는 회유에 넘어가기 쉬운 제도적 허점이 있다는 주장이다. “하루 종일 영업까지 뛰어도 손에 쥐는 돈이 월 150만원도 안 되는데, 당장 노조 나가라고, 파업 그만하고 대체인력으로 오면 자르진 않는다고 꼬드기면 넘어갈 사람들 많죠.” 티브로드 협력업체 소속 김모씨(38)는 ‘원청’의 지시를 곧장 따라야 하는 협력업체의 특성상 노조 탈퇴를 공공연히 요구하는 부당노동행위도 흔히 벌어진다고 했다.

속초의료원에서도 전국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의 파업은 7월 30일에 끝났는데 7월 31일에 직장폐쇄를 신고하는 위법 직장폐쇄가 벌어진 바 있다. 속초의료원은 직장폐쇄가 위법이라는 고용노동부의 행정지도로 8월 11일에야 직장폐쇄를 풀었다. 박노봉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원장 등이 진료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동안에도 예산을 들여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미국으로 환자 유치활동을 떠났다”고 말했다. 불법파업 수사는 난무했지만 정작 위법한 직장폐쇄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환자들 목숨을 담보로 파업하냐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병원에서 환자들 내보내고 병원 문 닫은 건 직장폐쇄 결정을 내린 의료원 경영진 때문이거든요.”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