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여당의 독주]새정치연합, 새누리에 배워라

정권교체를 위한 합의된 지향ㆍ비전 없어 개인·계파이익 우선시…

“혁신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말로만 떠들다 말아”

거대 양당의 ‘혁신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원혜영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치혁신실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새누리당도 9월 25일 최고위원회에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앞세운 보수혁신위원회의 인선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둘 다 혁신을 말하지만 더 절박한 것은 새정치연합이다. 최근 선거에서 잇달아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데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내부 갈등이 극적으로 노출됐다. 급기야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영선 원내대표가 탈당을 운운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정치권 관계자, 전문가들은 새정치연합이 완전히 새로운 혁신안을 찾기 이전에 기본부터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9월 25일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이 혁신위원 추가 인선 등과 관련해 김무성 당대표실로 들어가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박용진 전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새정치연합이) 모든 면에서 새누리당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변인은 새누리당과 달리 새정치연합은 합의된 지향과 비전이 없는 정당이라고 봤다. 정권교체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지점이 없다 보니 개인이나 계파의 이익이 우선시되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계획을 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논쟁하더라도 결속할 땐 결속해야”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당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매번 당내 경선을 앞두고 ‘경선 룰’ 협상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고, 최근 10년간 20번 이상 당대표가 교체되는 일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박 전 대변인은 “정당이라면 어느 정도 일사불란함이 필요하다. 논쟁이 많은 것이 나쁘진 않지만, 결정이 나면 여기에 따르는 것이 정당다운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과 달리 새누리당은 수면 위로 갈등을 잘 노출시키지 않는 편이다. 지난 7월 당대표 경선 당시 친박계 서청원 의원은 비박계 김무성 의원을 상대로 줄세우기 논란, 여론조작 논란 등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당대표 경선 이후에도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이 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익명 친박’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언론지상에 나올 뿐이다.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 인선에서 비박계가 대거 등용됐지만, 계파 갈등은 불거지지 않았다. 대표적 친박 인사인 이정현 최고위원은 “새누리당엔 친박·비박이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과 달리 새정치연합의 당내 분란이 계속해서 외부로 표출되는 결정적인 이유로는 지도력의 부재가 꼽힌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새천년민주당 내에도 계파 갈등은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시점에선 마무리가 됐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내부적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황 소장은 김대중 정부 때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한 바 있다. 황 소장은 “과거 야권은 재야·시민단체를 주도하며 정부·여당과 협상을 했는데 새정치연합은 오히려 끌려다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황 소장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새정치연합 계열 정당들이 당내 권력 해체에는 앞장선 반면, 지도부를 존중하는 문화는 많이 훼손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적인 정당이라면 선출한 지도자에 대해 일정 부분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면에서는 새누리당이 더 민주적인 정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9월 18일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박영선 원내대표가 국회 당대표실에서 악수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정당의 기본이 서지 않은 채로 혁신을 말하다 보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새정치연합은 7·30 재·보선에서 패한 뒤 ‘국민공감혁신위’를 출범시켰지만 공감할 만한 혁신안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다. 8월 초반 하겠다던 외부인사 명단 발표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반면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는 열흘 만에 20명의 혁신위원 인선을 마무리했다.

박용진 전 대변인은 “새누리당은 혁신하는 척이라도 하지만 우리는 항상 말로만 혁신을 했다. 물건을 어질러놓고 치우는 척이라도 하는 아이와 치우지도 않는 아이 중 어떤 아이에게 부모가 화를 내겠나”라고 말했다.

리더십·영속적인 시스템 필요
김두수 넥스트커뮤니케이션 정치전략연구소장은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당내 선거를 할 때 한 번 정한 방식을 오래 가져가는 데 비해, 야당은 한 번 합의가 된 경선 룰도 나중에 바뀌기 일쑤”라며 영속성 있는 제도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계파 갈등과 이합집산은 상층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정당의 핵심 조직인 사무처와 지역조직 역시 그 영향을 받는다. 새누리당 사무처는 2014년 공개채용 공고문을 통해 자신들이 1990년 민주자유당 시절부터 20년 넘게 이어진 조직임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새정치연합 관계자들은 정치적 이합집산의 결과 제대로 된 업무시스템도 세우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사무처노조 관계자 ㄱ씨는 “새누리당은 오랫동안 사무처 직원 공개채용 시스템을 진행해 왔고, 새정치연합은 이제야 3기를 뽑았다”며 “여러 차례에 걸친 분당, 합당으로 열린우리당 출신, (2004년 이전의) 구민주당 출신, 혁신과통합 출신, 안철수 측 당직자 등이 들락날락하고 뒤섞이는 바람에 한 가지 업무시스템을 세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ㄱ씨는 “언론과 평론가들이 새누리당 사무처를 높게 평가하는데, 개개인의 능력은 우리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며 새정치연합 혁신과정에 사무처의 안정화도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조직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시절부터만 따져봐도 새누리당은 20년 가까이 같은 사람들이 지역조직을 운영해 왔다. 그 결과 새누리당 강세지역에서는 당원 가입 선순환 구조가 생기기도 한다. 지역 직능단체 전직 임원의 상당수가 새누리당 당원이고, 다시 이들이 자기 후배들을 당원으로 가입시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지방의원 ㄴ씨는 “겉으로는 강력한 계파구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역 차원에서 보면 계파는커녕 지역위원회 자체가 없다시피 한 곳도 많다”고 말했다. 당내 분란에 신경을 쓰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민단체와 만날 여유가 적고, 조직의 약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 ㄴ씨의 설명이다.

다만 ㄴ씨는 “현재로서는 새정치연합 조직이 약세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지역에서 활동해보면 새누리당 당원들도 자발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는다”며 새정치연합의 혁신 결과에 따라 새누리당과 싸워볼 만하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