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아름다운 마을의 추악한 사건

냉혹한 이야기
루이즈 페니 지음·김보은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1만4800원

도시는 너무 삭막하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여 시골을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지내며, 힘들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이겨내는 평화로운 공동체. 하지만 시골이라는 공간은 낙원이 아니다. 일찍이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범죄소설이 보여주듯,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 작은 마을은 큰 도시의 축소판이다. 도시보다 시골의 범죄율이 오히려 높은 경우도 많다. 도시에 사람이 많기에 범죄의 절대적인 숫자가 많고, 끔찍한 범죄도 눈에 많이 띌 뿐.

<냉혹한 이야기>는 퀘벡 경찰청 살인반 팀장인 아르망 가마슈가 주인공인 5번째 소설이다. 범죄가 벌어지는 공간은 도시가 아니라 작은 시골 마을인 스리 파인스다.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착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마을. 평온한 삶을 원한다면 누구나 반할 만한 그런 곳이다. 그런데 살인사건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그게 이상한가? 작은 공동체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누군가가 살인을 저질렀음을 사람들이 깨닫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루이즈 페니는 말한다. 낯선 누군가가, 외부의 포악하고 잔인한 살인자가 아니라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대화하던 우리의 이웃이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그래서 루이즈 페니는 ‘아름다운 마을을 창조했고 매우 추악한 사건을 일으켰다.’

<냉혹한 이야기>에서는 숲에 살던 은둔자가 살해당한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올리비에의 비스트로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그가 살던 오두막에서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예술품들이 발견된다. 그는 대체 누구이고, 그를 죽인 범인은 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은 것일까. <월든>의 가르침대로 소박한 전원생활을 영위하던 그의 과거는 무엇일까. 가마슈는 부하인 보부아르, 라코스트와 함께 스리 파인스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탐문을 시작한다.

아마도 가마슈는 범죄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형사와 탐정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겸손하고, 선량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인간의 잔인함과 절망, 공포를 알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잊고 있는 소중한 선이라는 자질’도 알고 있으며, 신뢰한다. 추락할 위기에 몰려 있던 보부아르와 라코스트를 발견하고, 그들의 내면에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동료와 스승으로서도 가마슈는 훌륭하다. 초월적인 재능이 없는 보통 사람이기에 가마슈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들의 마음 안에 있는 양심과 두려움을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다.

북리뷰

루이즈 페니는 거대한 악이 아니라 우리 이웃들의 ‘냉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상의 사소한 감정들에서 시작되는 ‘악취가 나는 감정, 더럽고 부패한 감정, 그것이 남긴 끈적한 흔적’을 쫓아가다가 마침내 캐나다의 어두운 역사까지도 들려준다. 루이즈 페니는 보통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냉혹한 범죄들과 그들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지를, 범인만이 아니라 스리 파인스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흐트러진 ‘감정’을 통해 그려낸다.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 뒤틀린 감정들. 그러니까 문제는 후회나 두려움이 아니라 ‘양심’이다. 최후까지 우리를 인간으로 남게 하는 것은.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