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마녀-진짜 ‘마녀’가 나타났다

무비꼴라쥬

제목 마녀(The Wicked)

감독 유영선

출연 박주희_세영, 나수윤_이선, 이미소_세민

상영시간 93분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개봉 2014년 9월 11일

어디에 가나 꼭 있다. 살짝 맛이 간 친구. 일반적으로는 스트레스 강도가 꽤 높은 직업군에 많은 것 같다. 아아, 오해는 마시라. 네가 일하는 직장 이야기냐고 되물을 것 같아 노파심에 덧붙여놓으면 그건 아니다. ‘사주가 있는 언론사’에 근무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언론사에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사회생활하는 동료, 직장상사, 부하직원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예의가 아니다. 사적인 취향이나 생활과 업무는 구분돼야 한다. 이른 새벽, 텅빈 사무실. 전형적인 OL 차림의 여성이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그리고 한 여성의 자리에 앉는다.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은 그녀가 아니다. 자리 주인의 칫솔을 꺼내드는 여성. 자신의 하이힐 뒤축에 문지른다. 저주다.

<마녀>의 포스터는 개봉되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뭔가 섬뜩함 같은 것을 느껴야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왠지 풍기는 코미디 뉘앙스 때문이다.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 회사에 무서운 신입이 들어왔다.” 이 말의 주체는 복사기 옆에 멘붕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여 상사다. “팀장님, 저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이건 복사기 앞에 서 있는 ‘신입사원’의 발언이다. 그래서 어쩌자고?

이 영화가 ‘오피스 호러’, 그러니까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표방하고 나왔다는 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권력관계는 흔히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 설명된다. 노예의 노동이 없이 주인은 성립되기 힘든 법. 길항관계다. 표면적으로 상하관계가 정해져 있지만 상급자가 종노릇하는 경우, 흔한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 갈등으로 이야기를 뽑아내도 단편 분량 이상은 나올 것 같진 않은데? 갸우뚱하면서 극장에 들어섰다.

영화의 중반쯤 접어들었을 때 떠오른 영화는 일본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오디션>(1999)이었다. 스타맥스라는 영화사에서 수입했지만 끝내 영상물 등급위원회에서 등급보류되어 국내에서는 개봉할 수 없었던 영화다. 영화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 시간에 감독에게 물어봤다. 순순히 시인했다. 감독은 “<오디션> <캐리> 등의 영화와 호러소설을 참조했고, 캐릭터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들에게도 참조하라고 관련 영화를 건넸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영화에 등장하는 ‘작업도구들’,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소품들이다. 영리하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나 일본영화 <이블데드트랩2>와 같은 영화들이 관객들의 ‘추체험되는 신체훼손의 공포’를 어떻게 일으켰는지를 감독은 잘 알고 있다.

오피스 호러를 표방했지만, 이야기의 핵심 줄기는 사무실 밖의 공간, 정태춘의 노래가사를 빌려보면 ‘어쩌면 거기는 낭떠러지일지도 모를’ 각자의 사생활 영역에서 벌어진다. 영화는 ‘B급 호러영화식 농담’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다. “너 내장으로 줄넘기 해볼래?”라는 말이 조폭 영화에서는 단순한 협박이지만 B급 공포영화에서는 실제 내장으로 줄넘기하는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터치스크린

간단히 말해 이 영화 제목인 마녀는 은유가 아니라 진짜 마녀다. 캐릭터의 깊이는 아쉽다. 이를테면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Rosemary‘s Baby·1968)처럼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만들어놨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출연진들이 밝히는 것처럼, 3000만원 들여 만든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잘 빠졌다.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