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민영화엔 세 가지 검은 거래가 존재”

<블랙딜> 이훈규 감독, 외국 ‘민영화의 불행’ 다큐영화로 만들어

공공기관 정상화는 민영화의 다른 이름이다. 민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영화가 경쟁을 촉진하고 효율을 증대해 공공기관의 비효율성을 해소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민영화의 다른 이름은 공공기관 정상화가 아니라 검은 거래(블랙딜)라고 말한다. 효율성·경쟁력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고, 그 이면에는 민영화를 통해 이익을 얻는 정부와 자본 간의 검은 거래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 <블랙딜>은 한국보다 앞서 ‘국민을 위해’ 민영화를 추진했다는 나라들을 찾아간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칠레, 아르헨티나다. 프랑스나 독일 등의 국가는 민영화에 따르는 부작용으로 재공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 국가처럼 국민들의 비판과 저항으로 민영화를 돌이킬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민영화로 인한 경제불안과 심각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마저 무뎌져버렸다. 영화는 민영화가 어느 순간 한 사회를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끌고갈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고 지금 민영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한국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블랙딜>의 이훈규 감독을 만났다.

영화 제목 <블랙딜>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 가지 의미다. 첫째, 관과 민이 공영으로 제도화돼 있던 산업을 민간으로 내준다. 당연히 거기에는 뒷돈이 오고 간다.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검은 거래다. 둘째, 그렇다면 그러한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됐나? 아니다. 공공재를 민간에 넘기는 데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배제했다. 배제의 ‘블랙딜’이다. 셋째, 국민인 우리도 우리의 공공재가 어떻게 거래되고 운영되는지 외면하고 망각한다. 망각의 ‘블랙딜’이다.”

영화에는 현직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나온다. 그는 공공기관에도 경쟁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민영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정부 부처에서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구조와 제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이 민영화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기획재정부 외에 국토교통부와 환경부의 담당자들도 접촉했다. 이들은 섭외를 거절했다. 이유는 ‘민영화를 안 한다는데 왜 인터뷰하냐’는 것이었다.”

정부가 민영화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 물론 이에 대한 증거를 명확히 잡아내지는 못했다. 예컨대 민영화의 단계별 전략이 담긴 기밀문서 같은 것 말이다. 아마 내부고발이 있지 않고는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황은 충분하다. 이번 영화에서 6개국의 민영화 사례를 취재한 것은 지금 한국의 현실과 해외 사례를 맞춰보기 위해서다. 영국 등 앞서 민영화를 추진했던 국가들이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논리와 현재 한국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가 겹친다. 민영화를 추진했던 해외의 정부 관계자에게든 민간기업에든 한국의 현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민영화인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당연히 민영화로 가는 과정인데 지금 몰라서 묻느냐’고 대답한다. 이렇게 뻔한 상황인데도 정부는 ‘민영화는 아니다’ ‘정부를 믿어달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민영화 금지법’처럼 법으로 만들어놓자고 해도 법은 만들지 않고 그저 믿어달라고만 한다.”

영화에는 민영화 과정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른 한 프랑스 기업인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의 철학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적인 세계에는 도둑도 있고, 뇌물을 제공하는 자도 있고, 뇌물을 받아챙기는 자도 있다. 오늘날 부정부패가 발전을 방해하지 않는다. 중국은 극도로 부정부패가 심하지만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니까 한쪽을 위한 윤리가 있다면, 다른 한쪽을 위한 윤리도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가 바로 민영화론자들의 솔직한 속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거대 물기업인 수에즈의 전 CEO다. 그는 1989년 프랑스 그로노블시로부터 물사업 위탁을 받았다. 당시 수에즈사와 그로노블의 카리뇽 시장 사이에 거대한 블랙딜이 있었다. 나중에 그게 밝혀져서 감옥까지 다녀왔다. 그 사람은 민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민영화를 위해 검은 거래를 했던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차라리 이처럼 솔직히 이야기하는 게 낫다. 한국의 관료나 기업가들은 속내를 드러내기보다는 겉으론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포장한다. 한국의 정부와 관료·기업가들이 좀 더 자신들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철도 민영화 문제는 철도파업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물 민영화’는 우리와는 거리가 먼 사안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여기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물 민영화는 보편화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잘 모르고 있다. 이미 우리도 2003년 논산에서 처음으로 지자체의 물사업이 민간에 위탁됐다. 그 이후 대부분의 지자체가 물사업을 다른 기관에 위탁시켰다. 지금의 흐름이 프랑스나 영국에서 물 민영화가 진행될 때의 상황과 유사하다. 얼마 전 프랑스의 민간기업 베올리아가 경주시의 물 위탁사업자로 신청을 했다. 이미 국내 하수도사업에는 진출해 있는 회사다. 지난 3월 인터뷰했을 때는 상수도 분야는 민간위탁 신청을 안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얼마 전 다시 확인해봤더니 신청을 했더라. 겉으로는 안 한다고 하고 뒤로는 진행하는 식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진행되다 보면 물산업이 민간기업 품으로 들어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영화에도 나왔지만, 코오롱워터앤에너지는 10년 전부터 차근차근 물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 회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과 관계가 있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가 코오롱워터앤에너지의 고문변호사다. 그는 물산업 육성 포럼에 두 차례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듯 정황을 보면 물산업이 육성됐을 때 코오롱이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고 보이지만, 정부는 민영화는 하지 않는다고 말만 한다. 오해받고 싶지 않으면 ‘제3자 위탁 금지’와 같은 법조항을 명문화하자고 해도 그건 한사코 거부한다.”

영화에서 보여준 해외 민영화의 결과는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는데, 그 중 아르헨티나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미리 조사를 하고 갔기 때문에 심각한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 가서 보니 정말 심각하더라. 공공성 자체가 무너졌다. 남미 경제위기의 출발점이 아르헨티나발 모라토리엄이 될 거라고들 이야기한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간단하다. 공공재가 민영화되면서 기초생활 비용을 모두 값 비싸게 치르게 됐다. 그럼 나머지 소비를 할 수가 없다. 내수가 죽는다. 국민들 삶 자체가 무너지고 나라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가 예전부터 엉망진창인 것은 아니었다. 10년 전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10년 만에 확 망가진 것이다.”

민영화로 불과 10년 만에 한 나라가 빠르게 몰락할 수 있는가.
“그렇다. 아르헨티나는 10년 전만 해도 신자유주의에 대해 반대운동을 하고 민영화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민영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부정부패도 심해지고 시민들도 거기에 대해서 무감각해졌다. 정치인들이 부정부패를 해도 이를 2년 안에 잡아내지 못하면 처벌을 못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국민들이 이 법을 만드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국민들이 생활에 필요한 충족조건만 채워주면 더 깊은 문제를 고민하지 않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아르헨티나 온세역이라는 전철역에서 51명이 사망한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웃긴다. 온세역에 진입할 때는 열차가 시속 5㎞ 이하로 들어오게 한다는 게 대책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한국과 뭐가 다른가. 세월호 참사가 나니 수학여행을 금지시켰다. 얼마 전 누가 물놀이하다가 사망하니까 계곡을 메워버렸다. 사회가 그런 식의 정책, 아이디어만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가 사라지게 된 것도 민영화 때문인가.
“그렇다. 칠레에서 사람들이 전기가 안 들어오면 그냥 ‘전기를 달라’고 시위를 한다. 다시 ‘공영화를 하라’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거기까지 안 가는 것이다. 영화에서 본 아르헨티나 열차도 너무 낡고 더럽지 않던가. 하지만 시민들은 이 열차를 운행하는 회사가 어디인지 관심이 없다. 여기에 항의해도 개선되는 바가 없으니까 포기를 해버리고 무감각해져버리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철도노조가 사회운동에서 강성세력이었다. 그러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노조가 파괴돼버렸다. 한국에서도 지금 철도 자회사를 둔다고 한다. 철도회사가 여러 갈래로 갈갈이 찢어지면 단일노조 아래서 정보를 공유하고 목소리를 외치는 힘이 약해질 것이다. 또 임금 격차나 복지수준 격차를 둬서 노노갈등을 유발시키고 그 과정에서 어용노조도 많이 생겼다. 국민들이 노조를 믿지 않게 돼버렸다. 선의의 노조가 있다고 해도 그 목소리가 국민에게 전달이 안 된다.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잊어버리고 저항과 요구의 수준이 낮아지면서 눈앞에 가장 단순한 것만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칠레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한 학생이 대선에서 보수당을 찍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 학생은 높은 등록금 때문에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학비를 조달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대선에서 살인적인 등록금과 교육불평등을 초래한 보수당을 찍었다. 영화는 의미를 드러내기보다는 보는 사람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려 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따로 분석하지는 않았다. 그 학생의 투표행위를 분석해보자면, 그는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었고, ‘나도 조금만 더 잘 나가면 퍼스트 클래스로 들어갈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 칠레 사회의 문제가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운이 좋아서 나 자신은 그럴 수도 있지만, 나중에 내 아이들, 미래의 사람들의 경우는 또 어떨까.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내가 당선됐으니 5년간 빼먹을 것 다 빼먹고 가겠다면서 공공재를 민영화하면 나라 망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런 나라에서 그들의 자녀도 살지 않겠나. 특별한 계층에 올라가서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 살아남았으니 축적해 놓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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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민영화 문제의 중요한 변수가 시민들의 정치행위인가.
“그렇다. 영화에는 백지투표를 하는 학생도 나온다. 그는 백지투표를 하고 난 후 대자보를 직접 작성해 게시판에 내걸었다. ‘민영화로 남는 것은 불평등’이라는 메시지다. 투표로 귀결되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자기 의사표현을 한 것이다. 관객들이 각각의 투표행위를 보면서 나라면 어느 정치행위의 선상에 있는지, 궁극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공공재는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한 산업이기 때문에 공공재의 민영화 문제는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정치라는 것이 단순히 정치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동의해주고 반대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의 뜻은 올바르게 놓는다는 것이다. 정부, 기업, 국민들 자체가 적합한 정치행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각자 그러한 고민들을 해봤으면 좋겠다.”

<글·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