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가정의 달, 300원짜리 최고의 선물

가족은 삶의 가장 든든한 언덕이자 울타리다. 아무리 초라해도 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허리띠를 풀고 편안한 잠을 자고, 편안한 꿈을 꾼다. 20년 가까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사연들은 그래서 더욱 아리다.

병든 아내가 부쳐 온 낡은 치마 다섯 폭. 시집올 때 입었던 활옷의 붉은 빛은 이미 씻겨나가고 노란 빛도 엷어졌다. 다산은 빛바랜 치마를 가위로 잘라 작은 첩을 만들고 붓 가는 대로 경계하는 말을 지어 두 아들에게 보낸다. 훗날 이 글을 보면 감회가 일고, 두 어버이의 아름다운 은택이 느꺼워 뭉클한 느낌이 일지 않을 수 없기를 바라면서. 다산은 이를 책으로 묶고 표지에 하피첩(霞?帖)이라고 썼다. ‘노을치마’에 쓴 편지는 대학자, 정치가, 사상가로서가 아니라 가족과 떨어져 사는 아비의 마음과 부인에 대한 지아비의 그리움이 오롯하다. 유배지에서 보낸 아버지의 편지, 자식들의 가슴이 얼마나 시큰하고 뭉클했을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날(셋째 월요일), 스승의날(15일), 부부의날(21일)이 연이어 있다. ‘뭐니 뭐니 해도 현금(상품권)이 최고’가 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더 특별한 선물을 고민한다. 이번 가정의 달에는 300원(규격외 봉투 우표 값은 390원)짜리 특별한 선물을 해보자. 한 자 한 자 진솔한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의 감동,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선물이다.

진지하게 편지를 쓰고 있는 초등학생들. 마음이 담긴 편지는 어떤 선물보다 값지며 어떤 선물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부모님 전 상서…불효자, 이만 줄입니다’ 풍의 안부편지와 ‘아이야 보거라’로 시작되는 당부편지가 오가던 때가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다. 부모님의 당부는 험한 일 겪지 않고, 남에게 험한 말 듣지 말고, 어딜 가나 처신 잘하라는 게 전부였다. 이 소박한 소원 하나 제대로 들어드리지 못하는 게 자식이다. 5월이 가기 전에 불효를 뉘우치는 ‘부모님 전 상서’ 한 장 꼭 쓸 일이다.

5월이 아름다운 건 새 잎이 돋듯 우쭐우쭐 키가 자라는 아이들, 한 떨기 꽃과 같은 딸들과 아들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은 쏜살같아서 아이들은 금세 커버린다. 읽어 줄 책도 함께 할 놀이도 없다. 그러기 전에, 달랑 선물만 주고 끝낼 일이 아니라 ‘이제부터 너희들 꽃처럼 자라게 해주겠다’는 약속의 편지를 써서 읽어주어야겠다.

가뜩이나 초라해진 스승의날 행사가 세월호 침몰사고의 여파로 잇따라 취소되고 있다. ‘교실이 두려워’ 가슴앓이 하는 선생님들을 위로하고, ‘남몰래 아이들의 이름을 꽃처럼 가꾸는 기쁨을 키우고’ 있을 선생님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선생님들은 지금 제자들의 편지 한 통이 그립다.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우편물의 양이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라지만 그래도 한 해 40억통이 넘는 우편물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우본 통계에 따르면 2010년 49억통에 육박하던 우편물은 2012년 46억통, 지난해 44억통으로 줄었다.

이 많은 우편물 가운데 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얼마나 될까. 우편물을 뜯어보지 않는 한 정확한 숫자를 알 길은 없다. 다만 집배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우편물 100통에 한 통 정도가 손편지로 추정된다. 1년에 4400만통, 한 달이면 370만통, 하루 12만통쯤 된다. 손편지가 사라지는 디지털 세상에 매일 12만명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니 놀랍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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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숨 쉬기도 미안한 2014년 5월. 가까이 있어서 더 소홀히 했던 사람들에겐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아픔을 당한 이들에겐 공감을 전해야겠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쓴 편지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