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현실을 합리화하려는 ‘인지부조화’

“하나님의 나라, 아무 고통 없는 천국에 들어갈 14만4000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목사님이 이곳에 왔습니다. 갑자기 왜 이 마을이 저수지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마귀들이 천국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것이 두려워서 바로 뿔뿔이 흩어지게 하려는 간계다, 이겁니다.”

외지인인 최경석 장로가 집회에서 마을사람들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성철우 목사는 당신들의 ‘구세주’라고.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는 ‘물신 지옥’에 빠진 한국 종교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한다.

머지않아 댐이 건설돼 수몰을 앞둔 마을이 있다. 수십년간 살아온 공동체가 파괴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은 허하다. 이곳에 교회가 하나 생겼다. 기도원을 지어 한데 모여 살다 죽으면 같이 천국으로 가자며 마을사람들을 유혹한다. 병마에 시달리던 마을주민들은 교회에서 만든 물을 마시고는 몸이 좋아진다.

교회의 영험을 믿기 시작했다. 이때 오랫동안 마을을 떠나 있던 주정뱅이 폭군 김민철이 돌아온다. 악은 악을 아는 법. 민철은 교회 장로와 목사가 ‘가짜’라는 것을 안다. 아빠의 폭력과 난봉에 지친 딸 영선도 교회에 빠진다.

1950년대 미국의 한 종말론 교주는 조만간 홍수가 나 세상이 멸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기도를 하면 비행접시를 타고 온 외계인들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고 직장을 버리고 재산을 기탁한 뒤 한데 모여 기도를 했다. 예언의 날.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교주는 다시 말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를 해서 세상을 구했다!”고. 교인들은 “우리의 기도가 이뤄진 것”이라며 더 열정적으로 기도했다. 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가 1956년에 쓴 논문 ‘예언이 틀렸을 때’(When prophecy fails)에 담긴 내용이다.

페스팅거는 이런 상황을 ‘인지부조화’라고 말했다. 인지부조화란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이를 인정하기보다 그 행동이나 태도를 끼워 맞춰 불편한 마음을 줄이려 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내가 믿는 것과 현실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인정하면 그 충격이 너무 커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니 상황에 맞춰 내 믿음을 수정해 자기합리화를 꾀하는 행위다.

비싼 돈을 들여 명품 가방을 샀다. 제작과정에서 염색이 잘못돼 색이 바랬는데 이를 “불량이다”라고 주장할까? 그보다는 “원래 명품은 색이 잘 바랜다”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투입해 아이를 공부시켰는데 수능성적이 좋지 않게 나왔다. 학원이나 내 아이를 탓하기보다 “수능이 어렵게 출제됐다”고 합리화를 시킬 수도 있다.

하노벡의 <부자들의 생각법>을 보면 이탈리아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오르면 경제지의 판매부수가 늘어나고, 주가가 떨어지면 판매부수도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한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판단은 맞았지만 경제지의 헛된 정보 때문에 투자판단을 그르쳤다며 신문을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는 자신이 관여한 것이 크면 클수록 강해진다. 민철이 마을사람들에게 “장로와 목사는 사기꾼이다. 이들은 가짜다”라고 외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이미 이주보상금으로 받은 전재산을 기탁한 상황에서 교회가 가짜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민철의 고향 후배는 말한다. “우리를 그냥 이렇게 살도록 내버려둬유. 내 아내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럼 됐슈.”

영화 속 경제

민철의 딸 영선은 장로에게 속아 술집에 넘겨진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사업에 기여한다”고 믿는다. 몸마저 버린 상태에서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녀를 지탱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결국 목사와 장로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다음 선택은 자살이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