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외국 주재 한국대사관의 ‘단맛 골라먹기’

해외여행을 하거나 해외체류 중 곤란을 겪었을 때 대한민국 재외공관을 이용해본 사람 가운데 외교부의 ‘서비스’에 감동을 받아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뭐 하나 제대로 물어보기도 힘든 해외에서 외교부는 한국인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만 그 어깨는 그닥 넓어 보이지 않는다.

방은진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2004년 10월 프랑스 오를리 국제공항에서 체포돼 긴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30대 주부의 이야기다.

영화는 사실과 공상을 오간다. 한국인 30대 주부 송정연이 마약 운반범으로 검거된다. 생활비에 쪼들리던 정연은 남편 친구가 원석을 운반하는데 도와달라며 건네준 돈 300만원을 거부하지 못한다.

불법’은 아니라는 말만 믿고 물건을 나르던 정연은 그러나 통관대에서 마약임을 알게 된다. 그녀가 수감되는 곳은 캐리비안의 외딴섬 마르티니크 교도소. 한국에서는 거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곳이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 행정착오로 그녀의 무죄를 증명할 서류를 프랑스 법원에 제출하지 못한다. 그녀는 2년간이나 재판 없이 수감된다. 법정에 선 그녀. 판사에게 호소한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영화 속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은 프랑스를 방문한 국회의원들에게 매우 융숭한 대접을 한다. 이들이 만족스러워 해야 추후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외교부의 예산 확보에 막강한 힘을 갖고 있으니 외교부로서는 최고의 귀빈이다.

외교부 직원은 개인적으로도 국회의원과의 친분이 필요하다. 반면 ‘말썽을 일으킨’ 일반인은 그다지 매력이 없다. 국가공무원으로서 최소한의 서비스를 베풀면 될 뿐 굳이 적극 해결에 나선다고 개인에게 돌아올 보상은 그리 커 보이지 않아서일 게다.

경제 용어 중에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른바 ‘단맛 골라먹기’다. 원유에서 맛있는 크림만 떠먹고 다른 부위는 버리는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이들이 맛있는 케이크나 피자를 나눠주면 이 중 맛난 부분만 떼먹는 것도 같은 이치다.

최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KTX 수서발 자회사를 ‘크림 스키밍’이라고 말하면서 부각됐다. 원래는 통신이나 방송사업자가 도심 등 수요가 많은 지역에만 인프라를 구축해 수익을 높이는 반면 도심 외곽같이 수요가 적은 지역은 서비스 제공을 하지 않아 소외지역을 만드는 행위를 의미했다. 뜻이 확장되면서 철도, 수도, 가스 등에서 공공부문 민영화를 할 때 고수익이 나는 알짜기업만을 매각하는 행위도 크림 스키밍이라 부르게 됐다.

크림 스키밍이 처음 유행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97년 세계무역기구(WTO) 통신 협상이 타결돼 이듬해 국내 통신시장의 빗장이 처음 열렸다.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운 다국적 통신사들이 국내 노른자위 통신사업을 싹쓸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면서 이 단어가 널리 알려졌다.

크림 스크리밍은 개인의 이기를 앞세우는 자본주의에서는 비난하기 힘든 행위다. 때문에 공공성을 강화해 보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국회의원은 융숭하게 접대하고, 일반 국민은 홀대하는 외교관들의 행위도 ‘단맛 골라먹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약 운반과 연루된 국민의 뒤치다꺼리는 분명 ‘폼’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타이른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을 얼마나 망신 주는지 아느냐”고.

이들의 크림 스키밍을 막기 위해서는 관료들이 국민의 ‘공복’이라는 본연의 직업윤리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동시에 재외국민 보호를 외교정책의 1순위에 올리고, 대국민 서비스를 잘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영화 속 경제

국회의원은 융숭하게 접대하고, 일반 국민은 홀대하는 외교관들, 이들이 본연의 직업윤리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