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돈으로 진정한 벗이 될까

‘친구2’

“마이 컸네.”
준석은 어이없다는 듯 은기를 쳐다본다. 친구 동수를 살해한 죄로 17년간 복역했다 석방된 준석(유오성 분). 그 사이 조직의 보스로 성장한 은기가 막 출옥한 준석에게 잠시 외국에 나갔다 올 것을 권유한다. 17년 전 준석이 동수에게 잠시 하와이에 나가 있으라고 권유했던 일의 데자뷰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2’는 느와르다. 폭력의 미학을 담은 장르다. 그러다 보니 호불호가 엇갈린다. 선혈이 낭자한 과도한 폭력에 대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관객과 고개를 돌리는 관객이 한 영화관에 같이 앉아 있다.

17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준석을 은기는 견제한다. 준석의 오른팔, 왼팔은 모두 제거된 상태. 조직의 명목상 회장으로부터 추인을 받은 준석은 조직 탈환에 나선다. 그 곁에는 성훈(김우빈 분)이 있다.

성훈은 준석의 여자친구 아들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사고뭉치가 된 성훈은 준석에게 말한다. “어른남자가 내 편 들어준 기 그때가 처음입니다.” 준석은 성훈과 함께 은기를 몰아내고 부산을 ‘접수’하기로 한다.

친구(親舊)란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이다. 준석에게는 조직원들도 ‘친구’와 같은 존재다. 하지만 신세대인 성훈은 다르다. “언제 다 같이 조용한 데서 밥이나 함 묵자”라고 말하는 준석에게 성훈은 말한다. “밥 말고 그냥 돈 주시지예. 일단 돈이 있어야 식구가 되지예.”

자본주의 경제의 3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토지가 고정된 자산이라면 자본은 움직이는 자산이다. 노동은 토지나 자본을 따라 움직인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건달이 돈을 좇는 것은 매우 자본주의적이다.

‘‘같이 굶어도 보고, 같이 도망쳐 보고, 같이 죽을 뻔도 하고, 같이 얼싸안고 울어도 봐서’ 형님, 동생하는 시절은 지났다. 신자유시대는 더 이상 주먹이 낭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실리가 있어야 한다.

경제에서 ‘친구’란 돈으로 맺은 관계를 의미한다. 정치적으로는 적대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협력하는 것은 다반사다. 대표적인 것이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자유무역협정은 두 국가간 친구맺기다. 관세를 없애 다른 나라 눈치볼 것 없이 ‘친구끼리’ 자유롭게 거래하자는 것이다.

FTA는 다른 나라를 차별할 수 없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한국은 2013년 3월 현재 칠레, 미국, 아세안, 유럽연합 등 8건, 45개국과 FTA를 시행 중이다. 지금은 캐나다, 호주, 중국 등과 FTA 협상을 하고 있다.

단체로 ‘친구맺기’도 있다.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올 수능에서 EU와 NAFTA의 무역규모를 묻는 문제를 냈다가 혼쭐이 났다. 최근 한국이 참여의사를 밝힌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은 아예 ‘동반자’라는 명칭을 붙였다.

TPP는 환태평양 경제통합을 목적으로 2005년 출범했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4개국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미국, 일본, 호주 등 모두 12개국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역내포괄적 동반자협정(RCEP)도 있다. 아세안 10국과 한국, 중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다자협정으로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흑묘백묘론’을 제창하며 실리를 강조했다. 돈을 벌어주지 않는 의리나 명분은 진부한 가치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친구관계나 연인관계에도 돈의 위치는 중요해졌다.

영화 속 경제

하지만 돈이 정말 진정한 벗을 만들어줄까. 작가인 헨리크 입센의 충고는 되새겨볼 만하다. “돈으로 음식을 살 수는 있지만 식욕을 살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지인은 얻을 수 있지만 친구를 얻을 수는 없다. 노예를 부릴 수는 있지만 충신을 거느릴 수는 없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