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정부의 퇴행·야당의 무능 치명적인 정치위기 가능성”

김윤철 교수-정상호 교수 ‘한국 정치의 불가능성과 가능성’ 대담

2014, 다시 거리에 서나

‘정치 실종’은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한국 정치를 설명하는 말이 됐다. 사라진 정치의 자리에 공안몰이, 불통, 독선이 자리했다. 정치가 사라지자 한국 사회가 다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정치적 의제도 사라졌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지난 대선에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던 시대적 지표였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앞세워 집권했던 박근혜 정부는 지난 대선의 공약은 까맣게 잊은 채 ‘종북척결’만이 시대적 과제인 양 ‘종북인 것’과 ‘종북이 아닌 것’만을 분류하는 데 골똘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놓아버린 시대적 요청을 받아 안지 못한 것은 다른 정치세력도 마찬가지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민주당도, ‘삼성동물원’ ‘진보적 자유주의’를 내걸며 정치세력화를 선언했던 안철수 의원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시대적 과제에 미온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올해 전망되는 정치현상 중 하나는 기존 정치권에 ‘기대 못하겠다’ ‘못기다리겠다’ ‘판을 바꿔야겠다’ ‘내가 나서야겠다’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민주당 책임도 크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유권자의 요구를 대변해야 하는 정치세력들이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제도정치권으로 흡수하지 못하면서 정치는 다시 거리로 나서게 됐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론의 목소리는 제도정치권에서 전혀 해결되지 못한 정치적 의제들이 광장에서 분출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간경향>은 2014년 새해를 앞두고 ‘한국 정치의 불가능성과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와 정상호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의 대담을 가졌다.

김윤철 교수와 정상호 교수는 퇴행적인 정부·여당과 무기력한 야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최근 철도 민영화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등을 통해 시민들이 내고 있는 목소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압박하는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사회적 양극화 10년 동안의 경험 속에서 민영화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났다. 시민들은 이제 대안이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무엇이 아니라는 것은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정상호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

정상호 교수 “지난 12월 19일은 대선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두 가지 점에서 1년을 주목하고 싶다. 박근혜 정부가 선거과정이나 집권과정에서는 온건·중도였는데 통치과정에선 경직성을 보인다. 민주화와 개혁의 과정을 거치면서 보수세력도 민주적인 원리·규범·가치를 어느 정도 내면화하는데, 한국의 주류 보수들은 학습의 전이과정이 안 일어났다.

두 번째는 보수세력이 통상적으로 잘 하는 영역이 있다. 경제·외교·국방인데, 보수들에게는 신자유주의라는 텍스트가 있고, 동아시아에서의 역학관계가 기본적으로 반공 보수정권들이기 때문이다. 그

런데 박근혜 정부 1년 동안 사회적 양극화나 경제민주화 점수는 낙제점인데, 남북관계라든가 하다못해 그들이 잘 하는 한·일관계조차도 대단히 경직돼 있다. 저는 다른 보수정권과 비교해도 박근혜 정부가 낙제점을 면치 못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세력들조차도 이런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김윤철 교수 “박근혜 정부는 민주화 이후에 보수정권이 어떻게 통치해야 되는가에 대한 상을 못갖고 있다.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보수정부가 어떤 상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게 진보 쪽에도 없다보니 진보의 잣대로 보수정권을 평가한다. 갈등의 지점이나 의제를 만들어내는 것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만 간다. 크게 보면 한국에서 어쨌든 경제민주화를 하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할 시대적 과제가 있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진보적 경로가 아니라 친기업적·친기득권적 복지를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철도노조라든지 전교조라든지 민주화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사회적 기반들을 약화시키고 허물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영국의 대처와 비교해보면 대처가 그간의 복지체제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그와 연관된 사회적 기반을 해체하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화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사회적 기반들을 약화시키고 해체시키려는 경로에 있다.”

정상호 “박근혜 정부의 또 다른 문제 중 하나는 박근혜 정부를 조율할 수 있는 내부의 동력이 소진됐다는 것이다. 만약 인사가 바뀌지 않으면 이러한 기조는 그대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거과정에 있었던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 어떻게 보면 여권 지형 내 합리적이고 다양한 세력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집권 이후 김기춘 비서실장이 들어서고, 채동욱 검찰총장을 솎아내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지난 집권 1년 동안의 패턴을 그대로 이어갈 것인가는 연초에 정부 개각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윤철 “야당에서 내각 전면교체라든지 청와대 보좌진의 교체 등 분명한 인사에 대한 요구가 있어야 하고, 국민들도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가능성이 크다. 연말연초를 거치면서 만약 개각을 하지 않고 이 진용을 그대로 유지해 가면 큰 사회적 저항으로 갈 것이고, 민생개선 효과가 없는 상황에서 정치위기로까지 이어져 상당히 치명적인 상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정상호 “현재의 국면만 봐도 위기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론만 봐도 그렇다. 사실 민영화 자체가 한국 사회 시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한 사례는 많지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사회적 양극화 10년 동안의 경험 속에서 민영화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났다.

가혹할 정도인 경쟁체제의 심각성과 공공성이 MB정부에서 많이 약화된 것을 체감했다. 연봉 6500만원의 귀족노조니 하는 종편의 엄청난 선전·선동 속에서도 여론이 그래도 팽팽하게 나뉠 수 있는 것은 지난 10년, 15년 동안의 경험들 속에서 시민들이 이심전심으로 체득한 것이라고 본다.

대안이 무엇이라고 동의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무엇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안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되고 나서 ‘나는 대규모 공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그런데 철도 민영화 문제도 그렇고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도 그렇고, 지금 정치의 기능은 이러한 시민들의 경험에서 오는 위기감을 받아안기에는 대단히 협애화되어 있다.

대신 경찰이라든지 공안이라든지 이 쪽의 힘은 상대적으로 과잉됐다. 철도 민영화 문제에 더해 작년 대선 이후 벌어진 일련의 국면들이 이어지다 보면 내년 봄에 ‘거리의 정치’가 다시 소생할 개연성들은 높아지고 있다.”

▲ “최근 대학생들의 대자보는 ‘거리의 정치’ 연속성을 보여준다.”-정상호 교수
▲ “철도 민영화 반대도 촛불 경험 속에서 등장한 것이다.”-김윤철 교수

김윤철 “정부가 문제를 잘못 풀었다. 철도 민영화에 덧붙여 의료 민영화 등 민영화 세트를 추진하고 있다. 의료 민영화 같은 경우 민영화 반대 인식을 강화시켰다. 고령화 사회에서 의료는 굉장히 생활적이고 일상적이고 중요한 문제라는 걸 이미 체감했다. 민영화 자체에 대한 반대도 있지만, 민영화를 한꺼번에 몰아치려고 하는 데 대한 반감도 이러한 저항을 불러오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도 민영화 반대에 담겨져 있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한 징벌적 반응이라는 셈이다. 또한 정상호 교수가 말한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20년 가까이 우리가 경험해 왔다. 한국 사회는 체험을 통해 정치적 지식들이 축적된 사회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이 다 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상호 “최근 대학생들이 자보를 쓴 것도 ‘거리의 정치’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2004년 탄핵정국, 2008년 촛불, 2011년 희망버스, 2013년 밀양 송전탑 건설 중지 요청 등은 이러한 답답한 제도정치의 공간들을 비집고 나오는 자발적 시민들의 정치적 표출들이 계속 주기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간헐적 열정의 집단적 분출일 뿐, 최종적으로 이것이 제도정치 동력으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지금 계속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도정치권에 이러한 표출과 염원들을 제대로 받아달라는, 의제를 확장시키는 효과가 굉장히 크다고 본다. 제도정치권이 수렴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욕구나 열망을 한국 시민사회가 이런 식으로 표출한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성을 갖고 있다고 봐야 된다.”

김윤철 “그렇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특히 의미 있는 모습이다. 20대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데, 목소리를 낸다고 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어떻게 보면 아주 새로운 동력이라기보다는 계속 아우성쳐 오고 요동치던 사회적 흐름이 발현한 것이다.

모든 사회운동은 간헐적일 수밖에 없다. 생업 있는 시민들이 매번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으므로 계기들이 있을 때마다 이런 방식의 목소리 내기가 중요하다. 촛불이 뭘 남겼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데, 2008년 촛불은 2010년 지방선거 때 정부 심판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현상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정부 심판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또한 촛불은 시민적 저항의 방식도 남겨놨다. 지금의 대자보나 철도 민영화 반대도 어떻게 보면 촛불의 경험 속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이 남긴 게 없다는 것은 80년대 물음인 것 같다.

또한 이번 대자보의 형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대자보가 주장이었고 ‘따르라’는 권유였다면, 이번 대자보는 서로에 대한 안부를 묻는 형식이더라. 계속 소수가 선도했던 민주화가 사회적 공감을 통해 넓어진 기반 속에 시민주도적 민주주의로 변화해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각자의 일상공간에서 서로간의 연계라고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보면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인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조금씩 사회적 저변들이 다져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정치현상 중 하나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되는 게 기존 정치권에 ‘기대 못하겠다’ ‘못기다리겠다’ ‘판을 바꿔야겠다’ ‘내가 나서야겠다’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민주당 책임도 크다. 민주당이 대의정치를 충분히 수행했다면 이제 계속 기대하고 표를 통해서 해결할 텐데 그게 안 되니까 계속 거리로 나오는 거다. ‘안녕들 하십니까’ 자보가 나왔다면 민주당은 안녕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어떻게 안녕을 지켜줄 것인가 화답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안 나타난다.

민주화 때도 그랬지만 야당의 제도정치가 봉쇄되어 있는 상태니까 거리의 정치가 나타났듯이 무능하니까 거리로 나서고 있다.”

정상호 “문제는 다시 민주당이다. 민주당의 실패는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부 이래로 민주당의 경제노선이 부실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대중경제론 이후로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레토릭 말고 실질적으로 경제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국 정치에서 야당이 제일 건강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받았을 때는 오히려 70년대다. 유신체제 하에서 DJ, YS, 이철승이 선명야당론, 중도야당론, 통합론 등을 두고 노선투쟁을 벌였다. 단순한 계파가 아니라 노선을 둘러싼, 내용이 있는 경쟁적 구도가 야당을 살리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야당은 최근 몇 년 동안에 계파만 있지 노선투쟁은 없다. 야당의 진로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친노그룹의 지나친 협소성, 386이나 486 등 새로운 그룹들이 가지고 있는 퇴행적 보수성들이다. 새로운 의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열한 논쟁을 본 지가 꽤 오래됐다.

안철수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안철수 의원이 가지고 있었던 대단히 신선하고 매력적인 지점이 삼성동물원에 대한 비판이었다. 경제적인 통찰력으로 한국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인드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전혀 그걸 하지 못했다. 안철수가 가지고 있는 1년 반 동안의 시기 상실은 진보나 개혁 쪽에서 대단히 아픈 것이다. 정당공천제 폐지, 국회의원 축소, 이런 게 아니라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던 경제가 있는 정치의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실패했고, 민주당이 실패하고 있고, 안철수에게 기대했던 영역들, 이것들이 지금 총체적으로 증발돼 있는 것이다.”

김윤철 “안철수 의원도 노선경쟁을 과감하게 해야 한다. 새롭다는 이미지에 매달려 정치하려는 것은 이미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민생 개선과 경제민주화를 만들기 위한 야권의 재편 구상 이런 것들을 밝히면서 자신의 노선을 구현해 가야 한다.

자신의 노선을 이야기하지 않고 지금 기존의 질서에서 뭐가 잘못됐다는 것만 지적하는 비판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글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